■ 신간-「해질 무렵」

나는 바쁘게 살아간다. 당신도 바쁘다. 우리 모두 바쁘다. 바쁘기 때문에 뒤를 돌아볼 겨를이 없다. 내 발자국이 삐뚤게 찍혔는지 예상대로 찍혔는지 확인해 볼 시간이 없다. 그래도 문득 멈춰 뒤돌아볼 겨를이 생기는 때는 해질 무렵이 아닌가 싶다.
<삼포가는 길>과 <장길산>을 쓴 한국문학의 거장 황석영이 <여울물소리> 이후 3년 만에 장편소설 <해질 무렵>으로 우리 곁에 돌아왔다.

이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인생에서 해질 무렵에 선 사람들이다. 더는 변화할 무엇도, 꿈꿀 무엇도 없는 성공한 건축가는 ‘강아지풀’ 홀씨 하나로 문득 뒤돌아보게 된다. 서른을 바라보는 젊은 연극연출가는 반지하 단칸방에서 살며 아르바이트로 생계를 유지하지만 꿈만 꾸기에 이 세상은 너무 퍽퍽하다. 퍽퍽하기에 나아갈 수 없고 멈춰설 수 밖에 없다. <해질 무렵>은 멈춰선 인물들의 시간을 개인의 이야기로 한정짓지 않고 현대사와 교차시키며 이야기를 비비 꼬아 잇는다.      

황석영은 <해질 무렵>을 내놓으면서 짤막한 코멘트를 남겼다. ‘개인의 회한과 사회의 회한은 함께 흔적을 남기지만, 겪을 때에는 그것이 원래 한몸이라는 것을 깨닫지 못한다’고.
장편소설이라 하기에는 다소 짧은 200쪽이지만 그 깊이는 그것을 뛰어 넘고 당신의 가슴을 무겁게 칠 것이다.

황석영/문학동네/200쪽/11,5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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