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간-「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

전쟁에서 약육강식은 당연한 법칙이다. 강자는 약자의 목덜미를 물어뜯고 어떤 죄책감도 느끼지 않아도 된다. 내가 상대를 해치지 않았다면 내가 상대에게 해침을 당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무법천지인 전쟁터에서 약육강식은 유일한 규칙이며 대치 상황이 끝날 때까지 유효하다. 그래서 전쟁은 여성의 목소리를 좀처럼 들려주지 않았다. 승리한 자만이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전쟁터에서 여성에게 말할 기회는 주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여성은 오래전부터 협력자 혹은 희생자였다.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는 올해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우크라이나 출신의 작가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의 작품이다. 이 책은 목소리 낼 수 없었던 여자들이 바라본 전쟁을 이야기한다.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했던 200여명 여성들은 상처와 눈물, 절규로 아로새겨진 기억을 말한다. 그들은 처음 살인했을 때의 공포와 절망감, 끔찍함과 처절함을 말한다. 그녀들의 눈에는 적군도 아군도 모두 가엾기만 하다.

전쟁을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독특하게도 평화에 대한 개념을 상기시키게 한다. 아픔에 대한 공감, 인간성 회복에 대한 열망, 짙은 휴머니즘은 전쟁터 같은 삶을 사는 현대인들에게 뜻밖의 포근함을 느끼게 한다.
전쟁은 투박하고 빛바랜 구시대의 것이다. 가장 진보적인 것은 어쩌면 가장 여성적인 형상을 띠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문학동네/560쪽/16,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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