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고 마시면 더 맛있는 와인스토리㉙

살아있는 효모가 발효와 숙성과정에서 만드는 찰나의 맛

와인을 만드는 효모와
빵을 만드는 효모가 다를까?

와인과 관련된 수업의 첫머리는 늘 ‘와인이란 무엇인가. 와인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와 같은 이야기로 시작하게 된다. 그러다 보면 자연스럽게 포도열매 속의 당분을 효모라는 미생물이 먹고 알코올과 이산화탄소를 만들어내는 발효과정을 설명하게 된다.

여기에 등장하는 ‘효모’는 우리에게 이스트(Yeast)라는 이름으로 더 잘 알려진 미생물이다. 술보다는 빵을 만드는 재료로 더 친숙할 수도 있는 효모는 사실 자연의 과일껍질 같은 곳에서 흔히 발견된다. 이 때문에 포도와 같이 껍질이 약한 과일은 사람의 손길 없이도 쉽게 발효되어 와인이 만들어질 수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와인을 만드는 효모와 빵을 만드는 효모는 다른 것일까? 그렇지 않다. 사용 목적에 따라 달리 개량해 사용하지만 같은 미생물이다. 효모가 만들어내는 알코올과 이산화탄소 중에서 알코올에 관심이 있는 사람은 필자처럼 술쟁이가 되는 것이고 반죽을 부풀게 만드는 탄산가스에 관심이 있는 사람은 빵쟁이가 되는 것이다.

발효에 관한 얘기 중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일화를 소개하고 싶다. 수년 전 필자가 강원도 횡성의 어느 검문소를 지나치는데 앞차의 여성운전자가 음주단속에 걸린 상황이었다.  “훅!” 하고 불어낸 숨에 알코올 기운이 있었는지 단속경찰관의 손에 이끌려 차에서 내린 그 아가씨는 볼멘소리로 “진짜로 찐빵 밖에 안 먹었어요.”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아마도 단속경찰관은 그 말을 믿지 않았겠지만, 내 생각은 달랐다. 아가씨의 말이 사실일 수도 있다는 가정 하에 필자의 머릿속에는 한편의 시나리오가 그려졌다.

‘배가 몹시 고팠던 그 아가씨는 아마도 두어 시간 전쯤에 조금 덜 익은 찐빵을 잔뜩 먹은 것이리라. 달콤한 주스까지 한잔 마신 탓에, 덜 익은 찐빵 속에 살아있던 효모와 당분이 만나 발효가 시작되고, 뱃속의 따뜻한 온도에서 발효는 더욱 활발하게 진행되었을 것이다. 그 결과 약간의 알코올과 함께 탄산가스가 제법 만들어졌을 터이니, 그 아가씨는 운전 중에도 여러 차례 더부룩한 위장을 쓸어내리며 시큼한 트림을 했을 것이다. 그리고 몸에 흡수된 알코올은 불어낸 숨을 통해 음주측정기의 경보를 울리게 된 것이다.’
아쉽게도 결과를 확인하지는 못했지만 나의 추리가 맞았다면 그 아가씨는 아마도 무죄방면 되었을 것이다. 그 정도의 시간에 만들어지는 알코올의 양은 그리 많지 않았을 것이니 말이다.

40대 이상의 독자들이라면 위의 이야기와 같이 찐빵은 아니더라도 막걸리를 마시고 트림을 많이 해본 경험이 있을 수 있다. 최근에는 변질을 막기 위해 효모의 활동을 약화시키거나 살균하는 방법으로 만들어서 마신 후에도 속이 편하지만, 이십년 전쯤만 해도 살균하지 않은 막걸리 속에는 효모가 살아있어서, 마시고 나면 수시로 “꺼~억” 거리며 적잖이 트림을 해야만 했다. 그 트림과 더불어 뱃속에서는 자꾸만 술이 더 만들어졌을 것이니, 어찌 숙취가 없었겠는가. 더구나 트림에 섞여 나오던 그 시큼하고 꾸리꾸리한 냄새야말로 하이라이트였다. 함께 마신 술꾼도 불편할 정도였으니 이 냄새를 기억하지 못한다면 그 시절의 막걸리를 맛본 사람이 아닐 것이다.

▲ 김홍철(가평와인스쿨학과장)

그러나 그런 열악함 속에서도 어느 한 순간만은 기막힌 술맛이 있었으니, 그 맛은 '살아있는 효모가 발효와 숙성과정 그 어디쯤에선가 만들어내는 찰나의 맛' 이라고 밖에 표현할 길이 없다.
현대의 양조기술로 맛이 고정된 막걸리에서는 결코 찾을 수 없는 그 아슬아슬한 순간의 맛이 자꾸만 생각나는 날이다. 옆집으로 담을 넘던 고양이가 담장 위에서 나를 잠깐 돌아보았다.
‘딱 그 만큼의 시간이라도 좋을 것 같다.  그 기막힌 술맛이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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