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훈동 시인·칼럼니스트

▲ 김훈동(시인·칼럼니스트)

"대지에 숨을 불어넣어
생명을 키어온 농민들
땅과 생명에 경배하는
농촌이 사라지면 안 된다

추수기, 농민의 마음을
헤아려야 할 때다"

청명한 하늘과 살랑거리는 바람이 축제를 부추기는 계절이다. 도시 곳곳에서는 세대와 장르를 아우르는 다채로운 잔치가 펼쳐지고 있다. 하지만 추수기에 접어든 농촌들녘을 바라보는 농업인의 마음은 까맣게 타들어 간다. 공들여 거둔 알곡과 함께 손에 잡히는 실소득을 가늠할 수 없기 때문이다. 올해도 작년에 이어 벼농사는 풍작이다. 기뻐하고 즐거워해야 할 풍작이 오히려 농심을 참혹하게 한다. 요즘 농업인들은 걱정과 시름의 나날을 보내고 있기에 그렇다. 우리의 농업정책과 식량정책은 이제 개방시대를 맞아 더 이상 비켜가거나 호도할 수 없는 절박한 벼랑에 몰리고 있다. 추수기, 농촌들녘에 나온 정책입안자의 답변은 농업인의 볼멘소리에 알맹이 없는 통과 의례적 색채가 짙다. 농정당국은 지금보다 더 적극적으로 농심을 제대로 읽고 실효성 있는 정책추진을 위해 지속적인 노력을 수행해야 한다.

어려운 지혜는 인생이나 농정이나 마찬가지다. 농정의 핵심과제들은 정부도 알고 정치권도 알고 있다. 그동안 FTA(자유무역협정)대책으로 다양하게 제시돼왔기 때문이다. 문제는 과감한 예산을 투입해 행동에 옮기는 일이다.
쌀농사의 핵심은 이제 양(量)의 정책에서 질(質)과 가격중심의 정책체제로 전환하는 길밖에 없음을 모두가 인정해야 한다. 현실적으로 쌀농정에는 네 가지 큰 걸림돌이 있다. 첫째 햅쌀을 저장할 창고조차 없을 정도로 묵은 쌀 재고가 너무 많다. 둘째 쌀 소비가 계속 줄고 있다. 셋째 작년에 이어 연속된 풍작이다. 넷째 외국쌀 수입량이다. 쉽게 해결할 수 없는 문제들이다.

하지만 하나하나 풀어가야 한다. 소비에 비해 생산이 과잉이라면 과잉생산을 과감히 축소하는 방책들을 만들어야 한다. 더 이상 쌀농사를 보호할 수 없다면 휴경제(休耕制)를 도입하는 데서 대안을 찾아야 한다. 논농업직불제의 단가도 높이고 범위를 확대해 소득보장의 폭을 늘려야 한다. 우람한 볏가리가 얼마나 든든했던가.

이젠 풍년이 지겹다고 한숨이다. 쌀농사는 단순한 경제행위만이 아닌 우리의 삶과 역사와 동반한 산업이라면 ‘왜 쌀이 좋은가’에 대한 정서적 홍보보다 과학적 우수성을 펴야 한다. 쌀소비책이 간헐적인 대책수준이 아니라 보다 높은 국민적 합의차원에서 해법을 찾아야 한다. 쌀 위기는 우리 혀끝에서 왔다. 젊은이들에게 윤기가 자르르 흐르는 하얀 쌀밥에 붉은 김치가 더 이상 군침이 도는 이상적인 식사가 아니다. ‘패스트푸드’ 탓이다. 일본 농림수산성산하 식량청 예산의 40%는 쌀 소비촉진을 위한 홍보지원에 투자하고 있다.

농업은 본래 ‘신(神)의 산업’이다. 1년 넘게 계속된 가뭄으로 강수 절대량이 부족해 밭작물이 바짝 메말랐다. 일부 지역에서는 제한급수를 할 정도로 심각하다. 초강력 엘니뇨의 영향으로 내년 봄까지 가뭄이 계속될 것이라는 예보다. 이래저래 농업인의 마음이 타들어갈 수밖에 없어 안타깝다. 정치권은 내년 4월 총선을 위한 선거구획을 논의하면서 농촌 출신 의원수를 줄이겠다고 야단법석이다. 지역균형발전을 저해하고 농촌대표성이 그만큼 약화된다. 가뜩이나 정치권에서 숫자의 열세로 ‘농업인의 소리’가 옳게 반영되지 않아 해마다 농업·농촌 관련 지원예산이 절대적으로 부족하지 않았던가. 이 또한 걱정이다.   

정부, 농업관련 연구원, 정치권이 머리를 맞대고 어떤 방법이 쌀값 하락으로 근심하고 있는 농업인을 진정으로 위하는 것인지 냉철히 고민해야 한다. 대지에 숨을 불어넣어 생명을 키어온 농업인들이다. 땅과 생명에 경배하는 농촌이 사라지면 안 된다. 추수기, 까맣게 타들어가는 농심(農心)을 헤아려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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