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고 마시면 더 맛있는 와인스토리㉖

▲ 블라인드 테스팅을 위해 준비된 와인들.

블라인드 테스팅으로 즐기는 와인의 묘미

블라인드 테스팅은 와인에 대한 평가와 더불어
평가자의 시음능력도 알아볼 수 있다는 매력이 있다

최근 ‘복면가왕’이라는 프로그램이 많은 이들에게 인기를 끌고 있다. 가면을 쓰고 무대에 오른 참가자들의 노래를 듣고 투표로 승리자를 선정하는 방식의 음악프로그램이다. 얼굴을 가리고 편견 없이 노래만으로 승부한다는 신선한 발상을 통해 많은 참가자들의 숨은 실력과 시청자들의 호응을 이끌어내고 있다. 와인을 즐기는 자리에도 가끔씩 ‘복면가왕’이 아닌 ‘복면와인’이 등장하니 이름하여 블라인드 테스팅(Blind Tasting)이다.

우리말로 고쳐보면 ‘가린 시음’ 정도가 될 것 같다. 무슨 와인인지 알 수 없도록 병을 천이나 종이로 감싼 채로 시음하고 평가하는 것인데, 주로 객관성이 요구되는 와인품평회에서 많이 볼 수 있는 시음방식이다. 선입견 없는 평가를 받을 수 있다는 점에서 공정하고 매력적인 평가방식이라 할만하다. 그러나 블라인드 테스팅의 진정한 묘미는 평가의 대상이 와인만이 아니라는 점에 있다. 시음한 와인들이 베일을 벗고 나면 보통은 예상과는 다른 결과들이 속출하게 마련이고, 이때부터는 평가자들의 입맛과 전문성이 저울대에 오르게 된다. ‘복면가왕’에서 가면을 벗는 장면이 최고의 클라이막스인 것처럼, 블라인드 테스팅의 끝자락에는 예상 밖의 결과에 대한 놀라움과 탄식이 이어진다. 그리고 실력 있는 가수를 몰라 본 판정단원에게 ‘막귀’라는 놀림이 돌아가듯, 뛰어난 와인을 몰라본 평가자의 코와 혀가 웃음거리가 되기도 한다.

이렇듯 블라인드 테스팅은 와인에 대한 평가와 더불어 평가자의 시음능력도 알아볼 수 있다는 매력 때문에 품평회 이 외에도 와인전문가들의 교육과정이나 소믈리에 자격검정시험 등에서 반드시 거치게 되는 관문이다. 품평회에서 와인에 대한 항목별 점수를 매기고 간단한 심사평을 남기는 것에 비하여, 시음능력을 평가하는 시험에서는 와인에 대한 생산지, 포도품종, 빈티지(수확년도) 등을 알아맞히고 그 판단의 이유까지 서술해야 하는 경우도 있기 때문에 상당한 실력을 갖추지 않고서는 답변조차 쉽지 않다. 이론적인 공부만이 아니라 축적된 경험이 있어야 하므로 와인전문가를 꿈꾸는 많은 이들이 힘들어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또 하나의 문제점이라면 혼자서는 블라인드 테스팅을 하기 쉽지 않다는 것이다. 나 몰래 병을 감싸주고 오픈해 줄 누군가가 필요하니 친구나 가족에게 부탁해보자. 자연스럽게 즐거운 술자리가 만들어질 것이다. 와인에 문외한인 분들과 함께라면 2~3종의 비슷한 와인을 준비하여 상표를 보면서 한 모금씩 맛을 본 다음에 병을 감싸서 무작위로 섞어서 다시 맛을 보고 어떤 와인인지 맞혀보는 방식으로 진행하면 재미있을 것이다.

▲ 김홍철 가평와인스쿨학과장

얼마 전 필자가 속한 와인모임에서 블라인드로 두 가지의 와인을 시음하고 생산지와 포도품종, 빈티지를 맞히는 게임을 한 적이 있었다. 나름 테스팅에 자신이 있었던 필자의 답은 어이없게도 모조리 빗나가고 말았다. 부끄러웠지만 지인들에게 큰 웃음을 준 것으로 위안해야만 했다. 이렇듯 와인의 세계는 전문가들에게 조차 만만하지 않다. 독자들도 블라인드 테스팅에서 남들보다 성적이 좋지 않다고 의기소침하지 마시라. 블라인드 테스팅의 또 다른 용도를 소개한다. 혹시 주위에 와인으로 폼 잡기 좋아하고, 말 많고, 꼴사나운 사람이 있다면 이렇게 얘기해 보자.  
“블라인드 테이스팅 한번 하시죠. 맞히시면 계속 얘기하셔도 좋습니다.”

저작권자 © 농촌여성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