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제의 시집「어린 당나귀 곁에서」

슬픔과 기쁨을 투명하게 섞는다면 아마 김사인 시인의 목소리가 아닐까 생각한 적이 있다. 김사인 시인은 아주 단단하고 부드러운 목소리를 지녔다. 9년 만에 내놓은 세 번째 시집 ‘어린 당나귀 곁에서’는 이유 없이 마음이 부푸는 가을에 천천히 스며들 시집이다.

바스락 낙엽이 발등에 채이거나, 하루가 다르게 서늘해지는 아침공기를 마시며 괜시리 마음이 부풀 때 그의 시집을 꺼내들자. 이번 시집 ‘어린 당나귀 곁에서’는 삶과 죽음 사이에 놓인 아주 작은 사물과 사건을 통해 ‘간절함’이라는 마음을 꾹꾹 눌러 썼다. 온점 하나도 허투루 붙이지 않은 그의 치밀한 단정함은 시 속에 그윽한 날카로움을 갖게 됐다. 첨예한 많은 것은 시인의 입 안에서 둥글게 둥글게 깎여 모서리가 닳게 됐다. 그러나 오히려 번쩍이는 치열함으로 날카로움보다 더 예리한 곡선을 갖는다.

시집에 수록된 첫 번째 시 ‘달팽이’에서 그는 말한다. ‘모든 소리와 갈증이 다한 뒤에도 한없이 느린 배밀이로 오래오래 간다’라고. ‘망해버린 왕국의 표장처럼 네 개의 뿔을 고독하게 치켜들고 더듬더듬 먼 길을’. 수록된 그의 시 모든 속살에는 결국 한 가지 살내음이 묻어 있다. 그것은 ‘간절함’이다.

김사인著/ 창비/ 158쪽/ 8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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