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고 마시면 더 맛있는 와인스토리㉗

▲ 포도산지가 아닌 광명시의 와인테마파크의 와인동굴.

식성이 좋은 사람이라도 돌이켜보면 어린 시절 언제쯤에는 편식을 했던 기억이 있을 것이다. 와인에 대해서라면 식성 좋기로 유명한 필자도 과거에는 상당한 편식장이였다. 그럴 수밖에 없었던 것이 하나의 맛에 꼽히면 한동안은 그것 밖에 눈에 들어오지 않으니 어쩌겠는가. 긍정적으로 보자면 편식이란 일종의 집중이다. 한가지의 맛을 제대로 알기 위한 집중.

그래서 와인 애호가들 중에는 한동안 특정 지역의 와인을 집중적으로 마시는 경우를 많이 볼 수 있다. 조금 억지를 보태자면, 어느 지역의 와인에 집중하고 있는지만 보아도 대략의 내공 수위를 알 수 있다고나 할까. 다시 말해 와인 숍 진열대 앞에서 와인을 바라보는 모습만으로도 그 사람이 어느 정도의 와인애호가인지 금방 알 수 있다. 이것은 마치 초등학교 4학년이 된 아들 녀석이 요즘 들어 부쩍 매운 음식에 자주 도전하는 걸 바라보는 느낌과 비슷하다. 마음 속으로 ‘그렇지 이제 그럴 때가 되었지.’ 하며 피식 웃게 되는 그 느낌이다.

와인애호가들의 편식형태는 특정 지역의 와인에 집중하는 경향이 강하기에 대부분의 와인판매점에서는 진열도 생산지역별로 해놓는 경우가 많다. 소비자들은 자주 가는 서점의 익숙한 코너에서 책을 고르듯이 관심 있는 진열대에서 와인을 고르면 되는 것이다.
문제는 국내의 어떤 와인판매점에도 국산와인을 편식할 수 있는 코너가 없다는 것인데, 와인의 역사가 짧으니 당연하다고 말 할 수도 있겠지만, 해외 어디를 가도 자국 와인이 이렇게 푸대접받는 나라는 없을 것 같다. 국산와인은 매장에 진열될 기회 조차도 얻기 어려우니, 이것은 마치 저예산영화들이 스크린에 걸릴 기회조차 얻지 못하는 것과 비슷한 상황이다. 국내생산자들이 좀 더 분발하고, 제도적 장치도 마련하고, 소비자들도 좀 더 관심을 가져야한다는 말은 공허하게만 들린다.


이런 상황에서 얼마 전에 개장한 광명와인동굴의 소식이 눈길을 끈다.  폐광을 새롭게 단장하여 관광지로 개발한 공간에 국산와인을 전시, 판매하는 와인테마파크를 조성하였는데, 개장한지 몇 달 만에 하루방문객이 1만명이 넘는 명소가 되었다. 동굴 안에서는 각종 문화행사와 와인 시음행사가 진행되며, 인기 있는 와인은 하루에 수 백 병씩 팔린다니 대단한 성과라고 할만하다. 동굴을 와인 저장과 시음, 판매 공간으로 활용한 예는 광명이 처음은 아니다. 국내에만도 청도, 무주 등에서 와인동굴을 운영하고 있지만 수도권에서 거리가 멀고, 해당지역 와인의 판매에만 집중하고 있어 광명만큼 많은 사람이 찾지는 않는 상황이다. 처음 광명와인동굴 소식을 접했을 때, 많은 사람들이 포도산지도 아닌 광명에 웬 뜬금없는 와인동굴이냐는 생각을 했을 것이다. 그러나 다시 생각해보면 광명이 포도산지가 아니기 때문에 오히려 전국 각지에서 생산되는 와인들을 잘 수용할 수 있었다고 보는 것이 맞을 것 같다. 누구도 들러리가 아닌 공정한 경기장이 만들어진 셈이다.

▲ 김홍철 가평와인스쿨학과장

최고수준의 소믈리에를 관리책임자로 임명하고, 와인생산 지역 시군과의 업무협약을 통해 체계적인 지원을 해나가고 있는 광명시의 움직임은 또한 매우 훌륭하다. 부디 이곳이 지금보다 훨씬 다채로운 문화 콘텐츠로 채워져서 1회성 관광지에 그치지 않고 다시 찾고 싶은 명소가 되길 기대한다.
와인에 일가견이 있는 사람이든, 그렇지 않은 사람이든 유명한 와인을 손꼽아 보라면 프랑스 와인을 가장 먼저 떠올릴 것이다. 이것은 어찌 보면 오랜 편식의 결과일 수 있다. 그렇다면 이번에는 한국와인을 편식해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 편식은 해롭다고? 편식은 집중이다. 생각해보라. 우리가 소위 어른스러운 입맛을 갖게 되기까지 얼마나 많은 편식이 있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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