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고 마시면 더 맛있는 와인스토리㉖ - 국산와인

국산와인의 품질이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고 있다.
우리나라 와인도 언젠가는
명품의 반열에 오를 수 있지 않을까?

“우리나라 포도로도 와인이 되나요?”  
“식용포도는 당도가 부족해서 고급와인을 만들 수 없다고 하던데요.”
와인양조자로서 가장 많이 받는 질문이다. 간단하게 답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한국에서 와인을 만들고 있는 사람에게 이것은 그리 만만한 질문이 아니다. 국산와인의 품질수준이 아직은 세계적인 수준에 이르지 못하고 있으니 그 말이 맞는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고 있는 국산와인들의 품질을 보자면 우리나라 와인도 언젠가는 명품의 반열에 오를 수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안타까운 점은 와인을 만들고 있는 사람들이 결론을 내기도 전에 와인애호가들이 국산와인에 대한 기대를 접어버렸다는 것이다.  
정말 황당한 것은 10년 이상의 경력을 가진 소믈리에들 조차도 한국와인에 대한 경험이 전혀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는 점이다. 그럼에도 국산포도는 당도가 부족해서 양조용으로 사용할 수 없다거나, 식용포도의 향미는 술을 만들기에 부적절하다는 말들은 소위 와인전문가라는 사람들로부터 애호가들을 통해 끊임없이 전파되고 있다. 정작 와인을 만들고 있는 사람들이 실험결과를 내놓기도 전에 말이다.

이제 겨우 걸음마를 시작한 한국의 와인들이 미처 성장하기도 전에 가혹한 평가를 받는 것 같아서 급한 마음에 국산와인의 가능성을 보여줄 만한 중간 결과를 보고하고자 한다.
2007년 업계에서는 이름만 대면 알만한 국내의 소믈리에와 와인양조자가 만나서 명품 국산와인을 생산하기 위해 의기투합한 적이 있다. 부족한 당도를 설탕으로 보충하지 않고 포도를 건조시키는 방식으로 처리하고, 짙은 색상을 얻어내기 위해 국내산 머루를 소량 섞어서 양조하고, 오크통에서 2년 이상 숙성하는 방식으로 ‘23B’라는 와인을 탄생시켰다.

미국의 유명한 와인평론가 로버트 파커(Robert Parker)는 이 와인을 시음하고서 80점의 점수를 주었고 당시 한국와인으로서는 유일하게 그가 발행하는 잡지에 등재됐다. 다음 해인 2008년산 23B는 파커로부터 87점을 받았고 현재까지 한국와인으로서 이 기록은 깨지지 않고 있다.
필자가 보기에 87점이라는 점수는 정말 애매한 점수인 것 같다. 우등생이라고 하기엔 조금 부족하고, 낙제점도 아닌 것이 조금만 더 노력하면 훨씬 좋아질 것 같은 점수이지 않을까. 안타깝게도 이 와인은 한해에 600병씩 3년 동안만 만들어졌기에 많은 분들이 맛볼 수는 없었지만 국산와인의 가능성을 보여주기에는 충분한 본보기가 됐다.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 생각해보자. 와인의 최대의 매력은 무엇일까. 아마도 다양성이 아닐까. 그 다양성은 어디에서 오늘 것일까. 전 세계 각각의 와인생산지에서 그들만의 포도품종과 기후, 토양이 만들어내는 한계를 극복하고자 노력했던 양조자들의 손길, 그 결과물이 우리에게 다양한 와인을 만날 수 있게 해주는 것이 아닐까.

▲ 김홍철 가평와인스쿨학과장

그렇다면 우리나라의 와인이 프랑스나 이탈리아의 와인에 비해 다른 스타일을 갖는 것은 당연함을 넘어서 바람직한 것일지도 모른다. 물론 한국의 와인생산자들이 각고의 노력을 통해 지금보다 훨씬 높은 수준의 와인을 만들어 냈을 때에나 할 수 있는 이야기이다. 소비자가 찾는 와인은 독특하면서도 맛있는 와인이니까.
그런 점에서 보자면 필자를 비롯해 한국의 와인생산자들이 갈 길은 아직 멀고도 험하다. 다행스럽게도 최근 국산 와인의 수준은 하루가 다르게 높아져가고 있다. 와인을 만드는 사람으로서 한국요리에 가장 잘 어울리는 와인으로 국내산 와인을 주저 없이 추천할 그날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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