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전남대 농생명과학대 유수남 교수

농촌이 잘 살아야 도시가 잘 살고
여성 삶의 질이 올라야 남성이 편한 게 만고진리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는 정치적·경제적·사회적·문화적 생활의 모든 영역에서 여성농어업인의 능력 개발과 지위 향상, 모성 보호, 보육여건 개선 및 삶의 질 향상을 위해 종합적인 정책을 수립하고 필요한 재정 지원을 할 수 있다.’

지난 7월20일자로 개정․시행된 ‘여성농어업인 육성법’ 제3조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의 책무’에 나온 내용이다. ‘농업기계화 촉진법’에는 정부가 농업기계화 기본계획을 세울 때 여성농업인을 위한 농업기계 연구개발과 실용화에 관한 사항을 포함하도록 하고 있다.

2014년 기준, 우리나라 농업인 수는 275만 명이고, 이 가운데 여성이 141만 명으로 51.3%를 차지한다. 여성농업인 중 60세 이상이 51.5%나 된다. 이렇게 여성농업인 수가 증가하고 고령화됨에 따라, 정부에서도 여성의 활동영역을 확대하고 여성의 잠재된 역량을 아낌없이 발휘할 수 있도록 여성 친화형 농기계에 관심을 두고 있다. 여성 친화형 농기계는 여성의 신체적 조건을 고려해 여성농업인이 사용하기 편하게 설계‧제작됐거나 여성농업인이 많이 이용하는 농기계나 편이장비를 뜻한다.

벼농사는 기계화율이 높은 반면 여성농업인의 작업 비중이 큰 밭농업은 기계화율이 56.3%에 불과하다. 그래서 여성은 남성의 노동시간인 403.6시간에 비해 많은 437.2시간을 밭농업에 쏟고 있다. 밭농업 기계화 연구에 더 많은 투자가 있어야 함을 보여주는 예다.

농촌진흥청은 반자동 인삼 정식기 등 여성 친화형 농기계와 손잡이 회전가위 등 편이장비를 매년 4~5종 개발해오고 있다. 올해도 대추씨 제거기 등 여성 친화형 농기계 3종과 축산 보호장갑 등 편이장비 3종을 개발한다고 한다.

농림축산식품부도 여성 친화형 농기계를 적극적으로 보급해 나갈 예정이다. 내년에 신규 설치하는 농기계 임대사업소 42곳에 승용관리기, 동력이식기, 소형트랙터 등 여성 친화형 주요 농기계를 50%이상 의무적으로 구입하도록 했다. 이미 운영 중인 379곳의 임대사업소는 여성 친화형 농기계를 단계적으로 확대한다. 특히, 밭농업 경쟁력 강화 차원에서 콩, 마늘, 양파 등 20개 주산지에 여성 친화형 농기계 구입 예산을 별도로 지원하는 한편, 여성 친화형 주요 농기계 구입시 정부 융자율을 판매 가격의 80%에서 100%로 높일 예정이다.

여성농업인의 부상은 비단 우리나라만의 일이 아니다. 일본에서는 유니버설 디자인이라는 개념을 도입해 신체가 작은 작업자용 보조기구를 개발하고, 적은 힘으로도 끌 수 있는 기계를 만들었다. 또한 음성안내 기능을 부착해 여성이나 고령농업인이 편리하게 사용할 수 있도록 했다. 등에 매지 않고 밀면서 작업할 수 있는 주행식 예초기 등이 일본에서 개발한 여성 친화형 농기계이다.

농촌여성은 여러 가지로 힘들다. 농업 구조의 변화에 따라 생산뿐만 아니라 가공, 농촌관광, 소비자 직거래 등의 영역으로 여성농업인의 역할이 다각화되고 있지만, 전통적인 성별 역할 분담에 따라 생산 참여와 가사노동이라는 이중 부담에 처해 있다. 실제로 2013년 여성농업인 실태조사에 따르면 여성농업인이 농사일의 50% 이상을 담당한다고 답한 비율이 66.2%로 높았다. 동시에 가사노동의 75% 이상을 여성농업인이 담당하는 비중도 82.8%나 됐다. 농사일에 더해 가사노동까지 여성농업인의 몫인 것이다.

다각화되는 농촌여성의 역할을 재정립해 여성 특유의 섬세함을 영농현장에 정착시킬 수 있게 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여성 친화형 농업기계와 편이장비 개발에 대한 전 국민의 관심이 필요하다. 농촌이 잘 살아야 도시가 잘 살고, 여성 삶의 질이 올라야 남성이 편한 것은 만고의 진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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