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완주 박사의 농사에 대한 오해와 진실㉕

▲ 폭우로 토양이 유실된 경사지 배추밭.

여름부터 가을까지 우리 식탁을 풍성하게 만드는 고랭지 무·배추에는 강원도 높은 산에서 애쓰는 농가들의 어려움이 숨어 있다. 그들이 갖는 가장 큰 어려움은 두 가지인데, 가격폭락과 토양유실이다.

가격은 3~4년에 한 번씩 히트를 치면 대박이라는 소문이 있으니 다행이지만, 매년 일어나는 토양유실은 보통 문제가 아니다. 표토를 잃는 것은, 사람의 경우 피부를 잃는 것 같아 농사에 치명적이다. 경사지의 경우 토심이 얕아지면 농사가 안 된다.

한여름 쏟아지는 장대비를 누가 막겠나마는, 지혜롭게 하면 토양유실을 최소화해 농사를 매년 잘 지을 수 있는 방법이 있다. 비닐로 덮는 방법도 있지만 수확 후 제거가 어려운데다 빗물이 땅속으로 스며들지 못하는 만큼 표토를 타고 흘러내려(유거, 流去) 아래쪽에는 도랑이 생긴다. 물론 볏짚으로 피복하면 좋지만 너른 밭에 만만한 일이 아니다.
토양유실은 비가 올 때 얼마나 흙속으로 스며들게 하느냐에 따라 결정된다. 만약 100㎜의 비가 흙에 내렸을 경우 30㎜만 흙속으로 스며들었다면, 나머지 70㎜는 흘러내려가면서 엄청난 흙을 깎아간다. 이와 반대로 70㎜가 흙속으로 흘러들어 가면, 유실은 가볍다. 빗물이 많이 스며들면 스며들수록 흙에는 더 많은 물이 저장됨으로 가뭄에도 강해진다.

빗물이 잘 스며들게 하려면 포토를 부드럽게 만드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인데, 녹비재배만큼 좋은 것은 없다. 고랭지에서 엄동에도 안심하고 재배가 가능한 녹비는 호밀이다. 고랭지 어느 곳에서나 겨울을 거뜬하게 난다. 해발고도 600m까지라면 헤어리베치와 함께 혼파하면 환상적이다. 덩굴을 감고 자라기 때문이다. 콩과식물인 헤어리베치는 공중질소를 고정해 흙을 비옥하게 만든다. 대체로 고랭지 채소는 8월 말~9월 초순까지 수확이 끝나므로 늦어도 9월 중순까지 파종을 하면 된다.

파종량은 10아르 당 헤어리베치는 6㎏, 호밀은 12㎏이다. 혼파의 경우 헤어리베치 4㎏와 호밀 9㎏을 하면 안전하다. 뿌리고 나서 깊이갈이를 해주면 발아가 늦어서 동해를 입기 때문에 씨가 3~5㎝ 덮이도록 가볍게 로터리를 친다.
가을파종을 놓쳤을 때는 호밀의 봄파종도 좋다. 고랑에 뿌려도 좋지만, 몇 이랑 걸러서 1m의 초생대를 만들어주면 빗물의 속도도 줄여주고 농로로 사용이 가능하다. 감자밭의 경우는 4골, 배추밭의 경우는 10골에 한 골을 호밀 초생대를 만들어 준다.

이렇게 녹비를 재배하면 겨울동안 토양유실을 막고, 유기물이 흙을 떼알로 만들어준다. 또한 뿌리가 통로가 돼 빗물이 잘 스며든다.  
뭐니뭐니해도 유실의 가장 큰 주범은 위와 주변에서 흘러들어오는 물이라 우회수로를 잘 만들고, 비가 내리는 동안 자주 돌아보면서 밭으로 들어오는 물을 막아줘야 한다.

<도움말=고령지농업연구소 이계준 연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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