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완주 박사의 농사에 대한 오해와 진실(22)

유기물 적은 척박한 땅에
녹비재배는 땅심 높이는
가장 훌륭한 농법이다

올 중부지방 가뭄은 유난스럽다. 지난겨울 눈다운 눈이 안 온데다, 그동안 시원한 비도 없었기 때문이다. 길가에 심어놓은 쥐똥나무의 모습이 마치 오장육부가 타들어가는 농부의 모습 같다. 며칠 안에 비가 온다는 예보니 기우제를 지내는 심정으로 기다려본다.

우리가 대학생시절인 60년대까지만 해도 수리안전답이 귀했다. 게다가 7월초까지도 비가 오지 않은 해가 많아서 방학에 농촌봉사를 가면 물을 퍼서 모를 내는 일이 다반사였다. 그런 기억으로 보면 장마 전 6월 중순의 봄철 가뭄은 예삿일인 것 같다.

먹을 물조차도 귀했던 먼 옛날, 가뭄은 하루 한 끼니를 먹느냐, 두 끼니를 먹느냐를 판가름할 정도로 절체절명의 문제였다. 할머니는 가뭄이 들기 시작하면 호미를 들고 밭으로 나가셨다. 먼지를 펄펄 날리며 흙을 긁고 풀을 뽑았다. 어린 우리는 채소가 먹을 물을 풀이 채뜨려가기 때문이라고 생각했지만, 그게 다가 아니었다. 거기에 숨어 있는 지혜를 깨달은 것은 대학원에서 토양물리학을 배울 때였다.

겉으로 보기에는 딱딱하지만 흙덩이에는 무수한 통로가 거미줄처럼 연결돼 있다. 특히 아주 깊은 곳까지 아래위가 아주 가는 모세관으로 연결돼 있어, 물은 계속 그 모세관 통해서 겉으로 올라와 솔솔 증발되고 있다. 할머니의 호미질은 이 모세관을 깨뜨려 연결을 끊어줌으로 해서 쓸데없는 증발을 막아주는 것이다.

물을 대줄 수 있다면 가뭄이 무슨 걱정일까. 가뭄에 가장 좋은 대책은 흙에 될 수 있는 한 유기물을 많이 넣어주는 것이다. 최근 과학자들은 흙에 유기물의 함량이 0.5~3%까지 증가할수록 토양의 유효수분량(available water capacity, AWC)이 2배 이상 늘어난다고 발표했다. 게다가 유기물이 1~6% 늘어나면 흙의 공간은 5~25%나 늘어난다고 한다. 말하자면 유기물이 2%에서 3%로 증가하면 수분은 4%에서 6%로 증가하고, 이와 함께 물을 저장할 수 있는 능력은 5배 이상 늘어나 공간은 10%에서 15%나 증가한다는 것이다.

문제는 유기물의 확보가 물의 확보만큼 쉽지 않다는 것이다. 그래서 가장 손쉽고 값싸게 유기물을 확보하는 방법을 소개하면 ‘녹비재배’이다. 더운 여름철 농사를 쉬면서 놀리는 땅 10a에 수단그라스씨앗 5㎏이나 네마장황 8㎏을 뿌려두면 여러 가지로 이득이 크다. 적어도 2~3톤의 유기물 확보는 물론, 땅속 30~40㎝, 겨울 호밀은 1m까지 뻗는 뿌리는 토양의 물리성과 화학성을 동시에 개량해 준다. 연작장해를 없애주면서 장마로 오는 흙의 침식과 다짐을 막아준다. 매년 여름이나 겨울에 녹비를 재배하다 보면 가뭄에도 강해진다. 흙도 좋아져 농산물 수량과 맛도 크게 좋아진다. 우리나라같이 유기물이 적어 척박한 땅에 녹비재배는 땅심을 높여주는 가장 훌륭한 농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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