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고 마시면 더 맛있는 와인스토리㉑

▲ 토머스제퍼슨 대통령이 건축하고 머물렀다고 전해지는 미국 버지니아주의 대통령 사택인 몬티첼로.

최고의 와인 마니아 ‘토머스제퍼슨’의 각별한 와인 사랑

<유리에는 녹색-호박색 기미가 감돌았다. 병의 모양은 여성적이었다. 허리부분이 부드럽게 불룩 솟았다. 어깨부분은 나른하게 미끄러져 목으로 이어졌다. 고풍스러운 형태 이외에도 병에는 세월에 따라 낀 것이 분명한 녹청도 있었다. ... 중략...  아직도 유리가 보이는 병의 밑동 부분에서는 1787이라고 새겨진 숫자가 눈에 띄었다. 그 아래, 흘림체로 옛날 철자대로 ‘라피트Lafitte’라고 새겨져 있었다. 병 바닥에 가까운 자리에는 비밀스러운 약자 "Th. J."가 있었다. 미국 제3대 대통령인 토머스제퍼슨이 한때 소유했던 와인이라니 놀랄 만큼 매력적인 물건이었다.> -벨자민 월래스 소설 ‘억만장자의 식초’ 中 -

▲ 토머스제퍼슨

1985년 런던의 크리스티 경매장에서는 먼지와 세월의 때가 가득한 한 병의 와인이 15만6천달러(한화 약 1억7천만원)에 낙찰되는 기록적인 거래가 성사됐다.
이 와인의 이름은 1787년산 샤또 라피트로쉴드(Chateau Lafite Rothschild)로 미국의 제3대 대통령이었던 토머스제퍼슨이 소유했던 것으로 추정됐고 낙찰 받은 사람은 미국의 잡지재벌 말콤 포브스의 아들이었던 탓에 와인의 명성에다 소유했던 자와 낙찰 받은 자의 명성까지 더해져 세간을 떠들썩하게 했던 사건이 있었다.

문제는 이 와인을 비롯해 고가에 거래된 많은 희귀 와인들이 가짜라는 소문이 돌면서 경매회사와 와인감정인, 수집가들은 역사상 가장 큰 가짜와인 파문에 휩싸이게 된다. 이 당시 일부와인은 가짜로 판명됐고 현재에 이르기까지 그 법정공방들은 아직 끝나지 않고 있다.
지금껏 많은 논란을 낳고 있는 이 사건은 ‘억만장자의 식초’라는 벨자민 월래스의 논픽션 소설을 통해 세계적으로 알려졌다. 책에 나오는 등장인물들 또한 실제 인물들이다보니 책 때문에 다시 명예훼손 소송이 이어지기도 했다.

오래된 와인은 산화돼 식초처럼 변해간다는 사실에 빗대어 지은 ‘억만장자의 식초’라는 제목에서부터 허상을 쫓는 인간의 욕망과 집착에 작가의 조소가 느껴진다. “결국 한 병의 낡은 와인일 뿐인 것을......”
이 사건의 기사를 읽으면서 필자가 주목한 것은 경매당시 와인에 새겨진 토머스제퍼슨의 이니셜이 와인의 가격을 엄청나게 끌어올렸을 것이라는 점이다. 미국 대통령이 소장했던 것이니 그럴 만도 하겠다고 생각하겠으나, 제퍼슨의 위치는 다른 미국대통령과 다르다. 적어도 와인의 세계에서는 그렇다.

2달러짜리 지폐에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제퍼슨은 유명세로만 따지자면 조지워싱턴이나, 링컨보다 못할지 몰라도 박학다식한 면에서라면 단연 최고의 인물이었다.
그는 미국 독립선언서의 기초자이자 원예가였고 정치인이었으며 그 외에도 법률가, 건축가, 과학자, 고고학자, 고생물학자, 작가, 발명가, 농장주, 외교관, 음악가, 그리고 버지니아 대학교의 창립자였으며 누구보다 와인에 정통했던 와인애호가였다. 그는 1780년대 프랑스 공사로 재직 중이던 시절 와인에 깊이 매료 됐고,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북부에 와인생산지를 방문해 많은 와인과 포도나무를 미국으로 들여오기도 했다.

그가 작성한 유명한 와인에 대한 기록들은 1855년 프랑스의 보르도 지역의 특급와인(Grand Crus) 선정에도 참고가 되었다. 오죽했으면 ‘몬티첼로의 성인’이라고 칭해지는 그가 ‘파리의 비틀거리는 제퍼슨’이라는 별명까지 함께 얻었겠는가.
그의 기록에 등장하는 와인들은 1787년산 사또 라피트로쉴드, 1784년산 샤또 마고를 비롯해 샤또

▲ 김홍철 가평와인스쿨학과장

라뚜르, 샤또 오브리옹 샤또 디껨, 등 수백 종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1789년에 미국으로 귀국할 때 그의 86개의 짐 속에는 유럽의 유명 와인과 포도나무 묘목들이 포함돼 있었다. 귀국 후 그는 고향 버지니아주에 유럽에서 가져온 포도를 심어 포도밭을 일구기도 했는데 이 같은 열정에 힘입은 탓인지 버지니아주에는 지금 120여개의 포도원이 위치해 있으며 유럽에 비해 역사도 짧고 와인의 품질도 낮았던 미국은 현재 캘리포니아를 중심으로 최고 품질의 와인이 생산되는 와인 대국이 되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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