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광희 기자의 ‘세상만사’

‘비 내리는 덕수궁 돌담장 길을/ 우산 없이 혼자서 거니는 사람/ 무슨 사연 있길래 혼자 거닐까/ 저토록 비를 맞고 혼자 거닐까/ 밤비가 소리 없이 내리는 밤에’

1966년 진송남이란 가수가 불러 크게 히트했던 ‘덕수궁 돌담길’이란 노래의 가사 1절이다. 비오는 덕수궁 돌담길의 애잔한 풍경을 호소력 짙은 바리톤 풍의 미성으로 불러 잘 생긴 가수의 외모와 함께 여심(女心)을 잡아 흔들었던 노래다.
그런가 하면 1988년 가수 이문세가 불러 듣는 이로 하여금 잔잔하게 옛 추억에 잠기게 했던 시적(詩的)분위기의 ‘광화문 연가’란 노래도 있다.

‘이제 모두 세월따라 흔적도 없이 변하였지만/ 덕수궁 돌담길엔 아직 남아 있어요/ 다정히 걸어가는 연인들// 언젠간는 우리 모두 세월을 따라 떠나가지만/ 언덕 밑 정동길엔 아직 남아 있어요/ 눈 덮인 조그만 교회당’
샛노란 단풍으로 노을빛이 우련하게 감도는 가을, 순백의 눈부신 겨울 눈길의 고즈넉함, 청량한 바람결에 물결치듯 쓸리어 가는 돌담위 터널을 이룬 초록의 무성한 나뭇잎들… 이 덕수궁 돌담길에서 숱한 연인들이 애틋한 사랑의 밀어를 나누며 사계(四季)의 추억 한 자락씩을 그려갔다.
옛 시절엔 ‘영성문 언덕길’로도 불렸던 이 사랑의 언덕길, 고풍스런 1.1킬로미터 돌담길엔 우리나라 개화기 역사의 숨결도 함께 살아숨쉰다.

본래 덕수궁은 조선조때 세조가 남편을 잃고 궁을 떠나는 맏며느리 수빈 한씨(인수대비)를 가엾게 여겨 개인 사저로 마련해 준 것이다. 그뒤 한씨 장남 월산대군의 집이었다가 임진왜란 뒤 선조가 임시 거처로 사용한 것이 계기가 돼 경운궁(慶運宮)이 됐다. 광해군, 인조, 고종황제가 이곳에서 즉위했고, 순종 즉위 직후에 덕수궁으로 이름을 바꾸면서 대한제국의 황궁(皇宮)이 됐다.

그렇기 때문에 당시 미국·영국·러시아 공사관이 덕수궁 근처에 자리 잡았고, 선교사가 세운 정동교회, 국내 최초의 호텔인 손탁호텔, 그리고 이화학당과 배재학당이 들어섰다. 개화기엔 영국공사관 부근 길에 가구점이 즐비하게 들어서 외국인들은 이 거리를 가구거리, 혹은 장롱거리(Cabinet Street)라 불렀다. 언제부터인가 덕수궁 돌담길에서 데이트를 하면 두 연인이 헤어진다는 얘기가 떠돌았다. 풍수가들은, 덕수궁 안에는 왕의 승은을 입지 못한 후궁들이 모여 살던 처소가 있었는데, 그 궁녀들의 원혼이 질시하기 때문이라고 하나 그 또한 한낱 헛소문 같은 속설에 불과하다.

이 덕수궁 돌담길 전구간 1.1킬로미터가 131년만에 개방된다고 한다. 그동안 영국대사관의 보안문제로 대사관 정문부터 170미터가 ‘통행금지’구역으로 막혀 있었던 것.
이 신록의 계절에 새삼 덕수궁 돌담길을 걸으며 새소리, 바람소리를 듣고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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