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토종을 지키는 사람들

▲ 홍성씨앗도서관에서 인터뷰를 마친 뒤 검은 옥수수와 자주 옥수수 씨앗을 들고 활짝 웃는 금창영 씨.

충남 홍성군 홍동면 주민들 ‘홍성씨앗도서관’ 개관
토종종자 수집·대여… 채종포 운영 등 다양한 활동

지난 2월28일 충남 홍성군 홍동면에 홍성씨앗도서관이 개관했다. 토종 종자에 대한 중요성과 오늘날 종자에 대한 문제점을 인식하며 홍성 지역 농민과 풀무학교 학생들이 힘을 모아 씨앗도서관 설립을 도왔다.

홍성씨앗도서관(이하 씨앗도서관)에서는 홍성 지역의 토종 씨앗을 보존하며, 필요한 사람들에게 일정한 연회비를 받고 대여해준다. 풀무학교 씨앗동아리 학생들과 함께 씨앗마실을 진행해 씨앗에 담긴 이야기를 수집하기도 하고, 채종포를 운영해 매년 새로운 씨앗을 받을 계획이다.
“사실 ‘씨앗이 중요하다’는 것은 연구자들 사이에서는 고개를 끄덕일지 몰라도 현장에서는 그렇지 않습니다.”

홍성씨앗도서관의 창립 멤버 금창영(45) 씨의 말이다. 농사 형태가 점점 대형화되면서 토종 종자보다는 발아율이나 생산성이 보장된 개량 종자를 사용하는 농민이 늘어났기 때문이다. 일반 소비자들 또한 토종 종자와 종자 회사의 것을 구분하지 못한다. 때문에 농부들은 종자 회사의 씨앗을 굳이 마다할 이유가 없다.

금 씨는 2010년 무렵 홍성에서 예닐곱 명 정도가 모여 씨앗에 대한 책을 읽거나 이야기를 나누는 씨앗 모임을 시작했다. 2011년 봄 토종 씨앗 나눔 행사를 진행한 뒤, 상시적으로 씨앗을 나눠주는 씨앗 보급소를 운영했지만 씨앗 보존과 확산에 있어 한계점을 느꼈다. 2013년 다시금 토종 종자 모임을 해보자며 4명의 사람이 모였고 지난해 1월 대산농촌재단에서 진행하는 보조 사업에 ‘우리마을씨앗도서관 만들기’라는 주제로 지원금을 받게 된 후 본격적인 씨앗도서관 작업을 시작했다.

“국제 통상법을 전공한 김은진 교수의 마을 강연을 들은 적이 있었는데 그 때 들었던 것이 토종 종자의 ‘생물 다양성’이었어요. 토종 종자마다 가진 스토리가 있고, 그것을 기록하는 것이 매우 중요한데 나중에 이 종자가 우리 것이라고 주장할 때, 국제법상 효력이 있다고 하더라고요.”
김 교수의 강연을 들은 후 금창영 씨를 비롯한 풀무학교 전공부 씨앗 동아리 학생들은 ‘씨앗 마실’을 다니기 시작했다. 홍성 내  동네 할머니와 이웃 분들로부터 씨앗을 수집하고, 거기에 얽힌 이야기를 기록했다.

“토종 종자는 종자 회사의 씨앗과 달리 하나하나 개성과 역사가 있어요. 씨앗에 대해 이야기하시는 할머니, 아주머니를 만나서 얘기를 듣다보면 뭔가가 느껴져요. 그분들 눈빛이 반짝반짝 빛나거든요. 그게 뭘까 생각해보니 농부의 자부심이더라고요. 농사는 씨앗을 심고 키우는 일이고, 씨앗은 결국 생명이잖아요. 저는 거기서 농부의 자부심이 비롯된다고 봐요. 시집올 적부터 받아온 씨앗, 시어머니께 물려받은 씨앗 등 저마다 가진 씨앗에 대한 이야기와 역사를 지녔어요. 씨앗 마실 덕분에 씨앗 도서관의 존재 의미에 대해 다시 한 번 깨닫게 됐죠.”

씨앗지킴이로 유명한 안완식 박사는 토종씨앗 보존에 대해 ‘식량주권을 살리는 근간’이라고 말한 바 있다. 다국적 종자회사를 통해 들어오는 씨앗의 경우 씨앗을 받을 수 없어 매해 새로 구입 해야 하며, 씨앗마다 가진 고유의 개성이나 유전적 다양성은 사라지게 된다.
“농사란 단순히 공산품 찍어내듯 농산물을 생산해내는 것이 아니라 생명을 키우는 작업인 거죠. 거기에 씨앗도서관이 일조할 수 있어 기쁘고요. 씨앗이 말을 못해서 그렇지 다 기억해요. 자기가 어떤 땅에 심겨져서 어떻게 자랐는지, 그걸 바탕으로 새로운 환경에서 자라는 거죠.”

금 씨의 희망은 홍성뿐 아니라 각 동네마다 씨앗 도서관이 생기는 것이다. 각 지역의 토종 작물에 대한 씨앗을 보존·대여할 수 있도록 씨앗도서관의 매뉴얼을 만드는 것이 목표라고 했다.  
홍성씨앗도서관 앞에는 씨앗을 받기 위한 채종포와 작은 토끼 우리가 있었다. 우리 안을 들여다보니 눈도 못 뜬 새끼 토끼 예닐곱 마리가 꿈지락 꿈지락 생의 한 틈을 비집고 있었다. 생명을 움트게 하는 씨앗도서관에 또 다른 생명들이 깨어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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