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광희 기자의 ‘세상만사’

지난 2일 오전, 전 세계의 눈과 귀가 영국 런던 세인트병원의 산부인과 시설인 ‘린도 윙’ 문앞에 쏠려 있었다. 잠시 후 문이 열리고 종소리와 함께 “들으시오! 오늘 왕세손 저하의 둘째 아이가 태어났소~!”라는 소리가 터져 나왔고, 병원 문앞은 이 순간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던 시민들의 환호성으로 뒤덮였다. 영국왕실의 윌리엄과 케이트 미들턴 왕세손 부부가 이날 오전 8시34분 두번째 ‘로열 베이비’인 딸을 출산한 것이다.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증손녀인 아기공주는 할머니와 증조할머니의 이름 하나씩을 따 샬롯 엘리자베스 다이애나로 이름지어졌다.
그런데 여기서 놀라운 것은, 왕세손빈인 미들턴이 출산한 지 불과 10시간만에 전혀 산모답지 않게 노란색 꽃무늬 원피스와 하이힐을 신고 흰색 포대기에 감싼 아기를 품에 안은 채 병원 문을 나서며 손을 흔들어 시민들의 환호에 답하는 모습이었다.

이 모습을 보고 특히 동양권의 여성들이 “출산 당일, 그것도 10시간 만에 퇴원한 것도 놀라울 뿐더러 온몸을 꽁꽁 사매고 나와야 할 산모가 무릎까지 허옇게 드러내는 원피스 치마를 입은 모습은 충격이었다”는 반응을 보였다고 외신은 전했다.
이처럼 영국 왕실이 갓 태어난 ‘로열 베이비’를 바로 일반대중들에게 공개하는 것은, 17~18세기 유럽 왕실에서 태어난 아기가 ‘왕실의 적자(嫡子)’임을 현장 공개를 통해 확인받으려는 출산전통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저들의 출산전통을 보고 동양권 여성들이 충격적으로 받아들이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우리나라에서는 그리 먼 옛날도 아닌 불과 40~50년 전까지만 해도 거의 산부인과 병원이 아닌 집에서 출산했다. 산모의 산파역(産婆役)은 대부분 제일 가까운 여자어른인 시어머니나 친정어머니가 도맡았다. ‘순풍순풍’ 힘 안들이고 육칠남매 잘도 낳는 산모가 있는가 하면, 난산에 난산을 거듭하다 끝내 목숨까지 잃는 경우도 허다했다.

일단 아이가 태어나면 집 대문 앞에 금줄(禁~)을 내걸었다. 볏짚으로 성글게 왼새끼를 꼬아 늘어뜨린 다음 아들이면 숯덩이와 고추를 새끼 사이사이에 끼워 매달고, 딸이면 숯덩이와 작은 솔가지를 끼워 걸었다. 그리고 대문 왼편 기둥앞에 청수처럼 재를 푼 양잿물 그릇을 놓았다.

그렇게 삼칠일(3×7=21일)간은 식구 외의 외부사람 출입을 일체 못하게 했다. 부정과 잡귀를 막기 위한 액막이였던 셈이다. 물론 그 기간동안 출산어미는 미역국을 먹으며 한여름에도 펄펄 끓는 온돌방에서 찬바람 쐬지 않고 산후 몸조리를 했던 게 우리네 방식이었으니, 허연 무릎을 내놓은 산모가 출산 10시간만에 퇴원이라니 가당키나 하단 말인가. 새삼 동서간의 문화적 격차를 실감케 한다. 

저작권자 © 농촌여성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