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완주 박사의 농사에 대한 오해와 진실(17)

비행기 조종기술처럼
책만으로는 농사를
지을 수 없는 게 현실

가물에 콩 나듯 하지만, 강의 시간에 초를 치는 정말 ‘얄미운 당신’이 있다. 강의의 허리를 뚝 자르기 때문이다. 다른 강의도 어렵겠지만 흙과 비료에 대한 강의도 꽤나 어렵다. 강의 중 이런 질문을 받으면 등에 식은땀이 흐른다. “더 알아듣기 쉽게 설명할 수는 없나요?”

농촌진흥청 재임 동안 여러 대학에서 강의를 했다. 한 학기 14주, 한 주에 3시간 하면 총 40시간 이상 강의를 한다. 두꺼운 교재 한 권이 떨어진다. 기말고사 전에 나는 교과서를 들고 학생들에게 묻는다.

“여러분, 이 책 가지고 농사지을 수 있겠어요?”

학생들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교과서를 보고 농사를 지으라고? 모두 농사에 필요한 내용이긴 하지만 ‘비행기 조종기술’처럼 그것을 읽고 배우는 것만으로는 농사를 짓을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더구나 농민들에게, 그것도 2~4시간 안에, 생전 처음 대하는 용어로 흙과 비료를 이해시켜서 농사에 쓸 수 있도록 한다는 것은 마치 초등학생들에게 2차방정식을 가르쳐서 수학문제를 풀게 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그래서 만들어 낸 것이 9개로 된 ‘이완주 식 흙과 비료 키워드’이다. 키워드는 ‘과부촌, 깡패, 폴리스, 노숙자, 국민주택, 방귀귀신, 망나니, 천사, 그리고 현찰과 부동산’등이다.

이 단어를 모를 사람은 없을 것이다. 여기에 빗대서 흙과 비료를 설명해 나가는 식이다. 과부촌을 설명할 때 일어난 사건이다. 나는 흙을 과부촌이라고 부른다. 흙은 전기적으로 음(-)의 성질을 지녔으며, 그래서 양분(+)을 받아들이기 때문에 내 나름대로 붙인 별명이다. 그랬더니 어떤 아주머니 한 분이 손을 들고 일어나서 항의를 한다. “이 중에 과부가 있을지도 모르는데 그러면 씁니까?” 나는 순간 당황해서 “그럼 처녀촌으로 하지요.”라고 했다. 내 머리 속은 이미 ‘과부촌’으로 각인됐기 때문에, 머리는 쥐가 나고, 혀는 꼬여서 말이 아니었다. 미안한 일이지만, 과부라고 쓸 수밖에 없는 사정이 있다.

흙은 해로운 성분(예: 수소이온, 중금속 등)까지도 일단 흡수해서 독을 줄여 준다. 처녀가 할 수 있는 일인가? 어머니와는 달리 과부는 재혼의 가능성이 있으며, 실제로 흙은 환경에 따라서 배우자를 바꾼다. 그래서 우리는 농사를 지을 수 있다. 흙이 한 성분만을 고집하면 비료를 줘도 품어주지 않아서 모두 빗물에 씻겨 내려갈 뿐이다.

강의를 할 때는 강사의 말에 귀를 기울여주고 나중에 진지하게 질문으로 의문을 푸는 방법이 맞다. 다른 수강생에게 폐가 되지 않는 것도 좋은 음덕을 쌓는 일이다. 아무리 급해도 첫 술에 배부를 수 있을까. 교재를 여러 번 읽어보면 농사에 도움이 되는 길이 보인다.

저작권자 © 농촌여성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