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고 마시면 더 맛있는 와인스토리⑲

▲ 애니매이션 영화 ‘라따뚜이’의 한 장면.

 애니매이션 영화 ‘라따뚜이’에 등장하는
 거절할 수 없는 최고의 와인
 ‘1961년산 샤또 라뚜르’에 어울리는 요리는?

영화 속에서 와인이 비중 있게 다뤄지거나 소품으로 등장하는 장면은 밤을 새워 얘기해도 모자랄 만큼 많다.
그 중에서도 유명한 장면들을 손꼽자면 ‘카사블랑카(1942)’에서 잉그리드버그먼이 자신을 붙잡던 험프리보가트에게 던졌던 “뵈브클리코라면 남겠어요.”라는 대사로 더욱 유명해진 샴페인 뵈브클리코, ‘로마의휴일(1953)’에서 샤워를 마친 오드리헵번에게 그레고리팩이 건네던 짚으로 감싸진 이탈리아와인 키안티, ‘007’에서 제임스본드가 즐겨 마시던 샴페인 볼렝저 같은 와인들이 등장하는 고전 영화를 떠올리게 된다.

또한 지구 종말의 순간이 가까워 올 때 1등급 와인 샤또 무똥로쉴드를 마시는 장면이 나오는 ‘딥 임펙트(1998)’, 생을 마감하려는 노신사가 마지막으로 최고의 와인 로마네꽁띠를 선택하는 장면이 담긴 ‘포세이돈(2006)’과 같은 재난영화에서도 와인은 훌륭한 소품으로, 또는 죽음의 문턱에서도 포기할 수 없는 로망의 결정체로 등장했다.  
‘구름 속의 산책(1995)’이나 ‘사이드웨이(2004)’,‘어느 멋진 순간(2006)’ ‘와인미라클(2008)’처럼 아예 포도밭과 와이너리를 배경으로 와인을 만들고 즐기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중심이 된 영화도 있었고 ‘메트레스연인(2000)’처럼 주인공이 레스토랑에서 음식과 절묘하게 어울리는 와인을 추천하는 소믈리에라는 직업으로 등장하는 영화에 이르기까지 모두 저마다의 방식으로 와인을 통해 멋진 영상미를 만들어냈다.

이쯤 되고 보니 ‘영화 속 와인’이라는 제목으로 책은 한 권 쓸 수 있어도, 오히려 한 장짜리 칼럼은 쓰기가 쉽지 않은 형편이다. 고민 끝에 브래드버드 감독의 라따뚜이(Ratatouille, 2007)라는 애니메이션 영화 속 와인이야기를 선택했다.
제목에서부터 프랑스 냄새가 풍기는 이 영화는 아이들과 함께 봐도 좋지만, 와인과 요리에 관심을 가진 사람이라면 눈을 뗄 수 없을 만큼 재미있는 장면들로 가득 차 있다.

일류 요리사 구스토의 열혈 팬인 주인공 레미는 천부적인 입맛과 요리재능을 가진 생쥐이다. 뜻하지 않은 사건으로 가족들과 헤어지게 된 레미는 운명처럼 구스토가 운영하던 파리 최고의 레스토랑에 도착하게 된다. 호기심에 이끌려 주방을 들여다보던 중에 구스토의 아들 링귀니가 만들던 맛이 엉망인 스프를 요리본능으로 순식간에 맛있게 변화시킨 생쥐 레미. 그 재능을 알아본 링귀니는 레미와 동반자가 되어 구스토 사망 이후 쇠락해가던 레스토랑을 되살리게 되는데, 자신이 구스토의 아들인 것을 모르는 링귀니와 그에게 애정을 가진 여자요리사 콜레트, 링귀니가 나타나지 않았다면 구스토의 유산을 물려받았을 주방장 스키너, 파리 최고의 음식비평가인 이고 등의 인물들이 만들어내는 깨알 같은 이야기다.

스키너주방장은 링귀니의 요리 실력에 의심을 품고 그 비밀을 캐내기 위해 술을 못마시는 링귀니에게 와인을 권하는데, 이때 등장하는 와인이 거절할 수 없는 최고의 와인 1961년산 샤또 라뚜르(Chateau Latour)이다. 탑이라는 뜻의 이 와인은 한 병에 100만원을 호가하는 프랑스 보르도지역의 최고급와인이다.
더구나 1961년은 20세기를 통틀어 다섯손가락 안에 꼽을 만큼 보르도지역의 포도작황이 좋았던 해였으니 가격 또한 더욱 엄청나다.

영화 후반에 냉정한 비평가 이고는 1947년산 샤또 슈발블랑(Ch. Cheval Blanc)을 주문하며 그와 어울릴만한 최고의 요리를 가져오라고 주문하는데 와인애호가라면 이름만 들어도 흥분되고 손 떨리는 이 와인에 맞춰 레미가 선보인 요리가 바로 프로방스 지방의 평범한 채소요리인 ‘라따뚜이’이다.

▲ 김홍철 가평와인스쿨학과장

레미의 요리에서 어릴 적 엄마의 요리를 떠올리게 된 이고가 놀라움에 펜을 떨어뜨리고 감동하는 장면은 영화의 클라이막스를 장식하는 명장면이다. 그 순간 테이블에 놓인 라따뚜이와 샤또 슈발블랑의 어울림은 그 형태와 색상만으로도 군침이 돌 정도로 매력적이다. 비평가 이고의 마지막 독백 또한 긴 여운을 남기는 문장이다.
“우리는 혹평을 쓰기를 좋아하고 그것이 쓰기도, 읽기도 재밌다. 그러나 우리 평론가가 인정해야할 것은 하찮은 음식이라도 우리의 비평보다 더 중요한 의미가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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