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고 마시면 더 맛있는 와인스토리⑱

“한 잔쯤 남겨진 와인병은
소믈리에에게 주는 최고의 선물”

2000년쯤에 개봉했던 영화중에 멜깁슨과 헬렌헌트 주연의 ‘왓 위민 원트(What women want)’라는 영화가 있었다. “여성들이 원하는 것”이란 뜻의 이 영화는 자기 잘난 맛에 살던 주인공 닉(멜깁슨 분)이 헤어드라이어에 감전된 후로 여성의 생각을 귀로 들을 수 있는 초능력을 갖게 되는 이야기로 시작된다.

여성들의 생각을 들을 수 있게 된 닉은 직장상사인 달시(헬렌헌트 분)의 아이디어를 훔쳐 능력을 인정받게 되지만, 그 과정에서 많은 여자들의 생각을 듣게 됨으로써 자신이 그동안 얼마나 여성들을 모르고 있었는지 깨닫게 된다는 내용인데 주인공이 오만한 남성에서 최고의 매력남으로 변해가는 과정이 아주 잘 그려져 있다. 결국 상대방의 마을을 헤아리면 무엇이든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다는 말인데, 와인을 마시는 곳에서도 이것은 마찬가지다.

멋진 손님이 되는 방법은 다름 아닌 식당 주인과 종업원의 마음을 헤아리는 것이다. 가장 쉬운 것부터 시작해 보자.
첫째, 칭찬하라. 칭찬은 세상에서 가장 수익률이 좋은 투자이다. 외모이든, 서빙실력이든, 와인을 추천하는 안목이든, 어떤 것이든 좋다. 하다못해 식당의 인테리어라도 칭찬하자. 내가 와인에 대해 종업원보다 조금 더 잘 알고 있다면, 그 지식으로 종업원을 가르치려 하지 말고 사귀는 수단으로 삼자. 식당주인이나 종업원을 가르쳐서 대접받기 보다는 사귀어서 대접받는 편이 훨씬 가능성이 높다.
도대체 칭찬할 것이 없는 식당에선 어떻게 하냐구요? “얼른 나오세요.”

둘째, 입보다는 지갑을 잘 열어야한다. 그렇다고 고가의 와인이나 음식을 주문하라는 말은 아니다. 단지 말만 많고 돈 안 쓰는 손님은 밉게 보일 수 있다는 뜻이다. 이왕 돈을 쓰려면 와인과 음식에만 쓰지 말고 서비스에도 써보자. 문화적 차이겠지만 우리나라는 아직도 팁을 주는 것에 인색하다. 물건 값은 잘 내는데, 서비스에 대해서는 선뜻 지갑이 안 열리는 것이다. 그러나 서비스의 품질이야 말로 팁에 따라 엄청난 차이를 보일 수 있으니 대가를 지불할 만한 매력이 있지 않은가.
셋째, 음식은 비우고 와인은 남겨라. 앞서 언급한 바 있지만, 깨끗하게 비워진 접시가 조리사에게 보내는 최고의 찬사라면, 한 잔쯤 남겨진 와인병은 소믈리에에게 주는 최고의 선물이다.

소믈리에는 와인에 대한 폭 넓은 이해와 경험이 필요한 직업인데, 그런 경험을 쌓기 위한 경제적인 부담은 만만치 않다. 그래서 와인시음회도 다니고 시음용 샘플도 요청하지만 그것도 비싸지 않은 와인일 때나 가능한 얘기이다.
고가의 와인은 시음할 기회 또한 그만큼 귀하므로 손님이 남겨준 와인은 소믈리에한테 좋은 교재가 된다. 비싼 와인이라 남길 수 없었다고? 오히려 저렴한 와인이라면 남기지 않아도 된다. 소믈리에도 자주 마실 수 있을 테니까. 그러나 귀한 와인일수록 기회가 흔치 않으므로 남기는 의미가 크다. 나는 멋지게 남기고 일어서려 했는데 일행들이 “술을 남기면 쓰나”하며 깨끗이 비우고 일어나는 바람에 남기지 못했다고? 그런 불상사가 걱정된다면 소믈리에에게 잔을 요청해서 미리 한잔 따라주자.
 

▲ 김홍철 가평와인스쿨학과장

소믈리에의 환한 미소를 볼 수 있을 것이다. 그 미소는 그날로 끝나지 않는다. 귀한 와인을 소믈리에에게 양보했던 멋진 손님의 얼굴은 깊이 각인되어 다음에 그 곳을 다시 찾을 때도 남다른 환대를 받을 수 있게 된다.
소믈리에와의 이런 사귐이 반복되다보면 가끔은 소믈리에로부터 와인을 얻어 마시는 행운이 생기기도 하는데, 와인에 대한 이해와 식견이 필요한 순간은 바로 이때다. 다른 손님이 병째 남긴 고가의 와인이나 희귀한 시음 샘플을 소믈리에가 양보해 줄 만한 손님이라면 당신은 이미 멋진 고객이다. 그리고 그 와인의 가치까지 알아봐줄 수 있다면 당신은 최고로 멋진 고객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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