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호원 한국보건의료정책연구원 상임부원장

▲ 안호원 시인·칼럼니스트 한국보건의료정책연구원 상임부원장

"요즘은 개를 질질 끌고가도
동물학대로 벌을 받는 세상이다.
어떤 경우라도 자신보다 턱없이
약한 사람을 폭행하고
인격을 무참히 짓밟은 사람은
그에 따른 죗값을 톡톡히 치러야…
약자를 대신해 법이 응징해야 맞다"

“빨리 가려면 혼자 가라. 그러나 멀리 가려면 함께 가라”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은 인간의 사회성을 강조하는 뜻 깊은 말이다. 사회란 사람이 모여 이룬 집단이다. 최초의 사회, 작은 사회는 ‘가정’(家庭)이다. 한 남자와 한 여자가 부부의 연(緣)을 맺고 가정을 이뤄 자녀를 낳으면 가족이 형성된다.

작은 사회공동조직체를 이루게 되는 것이다. 그런 가정이 건강하면 사회도 건강해지고, 가정이 병들면 사회도 자연히 병들게 된다. 특히 가족은 서로를 돌보며 더불어 사는 사회적 존재이기도 하다.
오래 전 일이다. 가난에 찌들어 살던 60년대 말. 하얀 쌀밥이 먹고 싶어 방앗간을 하는 친구 집에 자주 들르던 때인데, 옆방에 어린 딸과 함께 세 들어 사는 30대 초반의 예쁘장한 아주머니가 있었다. 몇 번의 만남을 통해 그 아주머니가 요즘 말로 ‘첩’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누나뻘 되는 아주머니는 가끔은 얼굴이 시퍼렇게 멍들어 있거나 손등이 부어 있었다. 일주일에 두 어 차례 들러 몇 시간씩 있다 가는 남편에게 폭행을 당해서 그렇다고 친구가 귀띔을 한다. 남편이 시키는 대로 해야 하는데, 말대꾸를 하면 폭행을 휘두른다는 것이다. “본부인도 아닌데 왜 맞고 사냐?”고 물었더니 “배운 것도 없고, 친정도 변변치 않고, 그저 나 하나 참으면 조용해지니까. 또 도망가봐야 금방 붙잡힐 테니까. 매 맞고 나면 갈비도 먹으러 가고, 잘해줘. 나이 들어 힘 빠지면 못 때리겠지 뭐…”라고 말한다.

무식하고 가난하다 보니 밥만이라도 해결되는 것을 감사하게 생각하며 체념상태다. 그렇게 사는 그 아주머니가 측은해보였다. 그 후 서울로 올라오면서 그 아주머니를 까맣게 잊었다가 며칠 전 다시 생각이 났다.

금실도 좋고 신앙심도 좋다고 소문났던 개그맨 서세원과 서정희의 이혼 재판 결과다. “배우지도 못했고, 친정도 가난하고, 난 그저 좀 귀여운 얼굴과 나이 어린 것 밖에 없고, 18세 어린나이에 뜻하지 않게 순결을 잃으면서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었고, 말 안 듣는다고 실컷 때리고 나서는 고기 사주고, 선물도 사주고, 30여년 넘게 노예생활을 했지만 나 하나 참으면 가족은 지킬 수 있었으니까.” 어쩜 이럴 수가, 예전 누나뻘 되는 그 아주머니랑 서정희가 하는 말이 그렇게 똑같을 수가 있을까.

매 맞고 사는 여자들의 공통점은 ‘가족의 행복을 위해 나 하나만 참으면 가정은 지킬 수 있으니…’라는 생각을 갖고 있다. 임상심리학자인 윌리엄 페즐러는 “남의 눈을 의식해 착한 여자라는 칭찬을 받고 싶어서, 남을 위해 자신의 욕망을 희생하려는 심리 상태가 착한 여자 콤플렉스”라고 말한다. 이는 바로 ‘여자는 착해야 한다’는 동양문화권의 주입식 교육으로 생긴 악습이다.

재판은 아직도 진행 중이다. 양측이 아직도 억울한 피해자라고 주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서정희가 32년간 노예 생활을 해왔는지, 서세원이 수시로 오줌을 쌀 정도로 목을 조르고, 때린 후에 신경안정제를 강제로 먹였는지, 확실한 건 모르겠지만 제 아무리 유명한 변호사라도 바닥에 나동그라진 여자의 다리 한 짝을 들고 엘리베이터로 질질 끌고 간 서세원의 폭행영상을 뭐라고 변호할 수 있을까. 이 부분에서도 서세원은 “사실은 그녀를 일으켜 주려고 손을 댄 것”이라고 구차하게 변명하지만 과연 몇 사람이나 그의 말을 믿어줄까.

‘그래도 목사가 되면 달라질 줄 알았다’는 서정희. 가정 파탄을 우려하면서 30여 년 간 노예 생활을 혼자 삭이면서 살아왔던 그녀의 삶이 얼마나 고통스러웠을까 가히 짐작이 간다.
요즘은 미개한 개를 그렇게 바닥에 질질 끌고 가도 동물학대로 벌을 받는 세상이다. 어떤 경우라도 자신보다 턱없이 약한 사람을 폭행하고 인격을 무참히 짓밟은 사람은 그에 따른 죗값을 톡톡히 치러야 마땅하다. 약자를 대신해서 법이 응징해야 하는 게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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