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래를 여는 젊은 여성농부들 ⑩한국농수산대학 식량작물학과 졸업 강보람 씨

고구마 좋아하는 고구마집 딸의 본격적인 농사 입문기

“맛있는 고구마 욕심, ‘강보람 고구마’로  태어났어요”

1998년. 아토피로 고생하던 강보람 씨(24)는 어린시절부터 극심한 아토피에 시달렸다. 힘겨워하는 보람 씨를 보다못해 보람 씨의 부모님은 귀농을 결심했다.
아무런 준비없이 농사에 뛰어든 탓에 보람 씨의 부모님은 수차례의 실패를 거듭하며 결코 만만치 않은 현실에 직면했지만 시골의 좋은 환경에서 보람 씨의 아토피는 씻은 듯이 나았다.
보람 씨의 부모님은 그간의 힘들었던 일들을 모두 잊고 농촌을 자신들의 은인이라 손꼽았다.
18년이 지난 지금, 부모님의 은인인 23만여㎡(7만여평)의 고구마밭은 이제 보람 씨의 삶의 터전이 됐다. 이제 갓 농업계에 데뷔한 보람 씨를 만나봤다.

▲“보람아, 농사 한번 배워보지 않을래?”= 도시보다 농촌이 좋다는 24살의 보람 씨. 보람 씨의 농촌 생활은 어린시절 부모님의 귀농으로 시작됐다.
“어렸을때 TV에나 나올 법할 정도로 아토피가 심했어요. 치료를 위해 안해본 방법이 없었죠. 결국 부모님은 시골로 내려오는 것 외엔 방법이 없겠다는 결론을 내렸고 고모가 계신 김제로 내려오게 됐어요.”

그렇게 자신을 괴롭히던 아토피 증상을 말끔하게 씻어준 농촌이 정말 좋았다.
농촌이 좋다는 보람 씨지만 그래도 농사를 짓겠다는 생각은 꿈에도 해 본 적이 없었다.
“예체능 분야에 관심이 많아 진학에 고민을 많이 했었어요. 그러던 중 엄마가 한국농수산대학 진학을 제안하셨죠.”
생각지도 못한 길이었다. 아무런 준비없이 귀농을 택했던 부모님에게 가장 간절했었던 ‘체계적인 교육’을 딸이 채워주길 바라는 마음이었다.
어머니의 너무도 적극적인 설득에 그녀는 뭔가에 홀린 듯 그렇게 한국농수산대학에 입학했다.

▲점차 농사의 매력속으로…= “농촌이 좋긴했지만 농사에 대한 선입견이 있었어요. 농사를 지을 생각도 없는데 억지로 들어왔다는 생각에 입학하고 한동안은 학교에 적응못하고 방황했죠.”
입학 당시 보람 씨는 학교를 그만두고싶다며 울고불고해 학교에서도 유명인이었을 정도였다.
하지만 수업을 들으면 들을수록 농업인의 꿈을 키워가는 사람들을 만나볼수록 그녀의 마음은 점차 농사의 매력에 빠져들고 있었다. 학교에서 배운 것을 집에서 적용해보기도 하면서 ‘농사꾼 흉내’도 내기 시작했다.
어느 순간부터는 성공한 농업인들을 만나면 ‘나도 저렇게 되고싶다’는 꿈도 갖게 됐다.
“2학년 실습 기간에 무안에 있는 바이오에너지작물연구소에서 근무를 하면서 더 큰 애착이 생긴 것 같아요. 졸업 후에 4-H, 농업경영인 등의 활동을 하면서 배울게 많더라구요.”
농사 짓는 것도 싫다던 보람 씨는 이제 결혼도 농사짓는 사람을 만나고 싶을 정도로 농사의 매력에 푹 빠져버렸다.

▲‘강보람 고구마’ 고구마 대표 브랜드로 키울터…= 보람 씨는 3년 정규과정 외에 1년의 심화과정을 거쳐 지난해 대학을 졸업했다.
이제 농업계 갓 데뷔한 셈.
부모님의 노력으로 보람 씨 가족의 고구마 농사는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아가고 있지만 이제는 판로가 문제였다.
보람씨네 고구마는 어디 내놔도 뒤지지 않는 맛과 품질을 자신하지만 아직 고유의 브랜드가 없이 작목반 이름으로만 출하가 되고 있기 때문이다.

“학교를 졸업하자마자 부모님이 저에게 마케팅을 전적으로 맡기시고 제 이름을 딴 브랜드를 만드셨죠. 캐리커쳐를 넣은 명함도 만들고 박스도 제작해 온라인 판매부터 시작했어요.”
간판도 만들어 달고, 체험활동을 할 수 있는 시설도 꾸미고 올 한해 보람 씨는 하고 싶은 일이 정말 많다. 하지만 보람 씨가 가장 중요한 일로 꼽는 것은 바로 최고의 고구마를 생산해내는 것이다.
“‘이 집 고구마 정말 맛있다’라는 소리를 듣고 싶어요. 나중에 소비자들이 고구마를 찾을때 ‘강보람 고구마’를 가장 먼저 떠올릴 수 있게 하는게 꿈이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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