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완주 박사의 농사에 대한 오해와 진실(12)

▲ 고추에 고랑에 흘러내릴 정도로 너무 물을 많이 주어 뿌리가 질식했다. 물을 빨아들이지 못하는 사정도 모르고 주인은 계속 물을 준다. 고추는 더 시들어간다.

과습보다 건조가 피해 덜해
과습으로 뿌리가 죽어가면
물도 양분도 빨아먹지 못해

농사를 지으면서 물을 적당하게 주는 것이 가장 좋겠지만, 물을 많이 주는 것이 좋을까, 아니면 마르는 게 좋을까?

아들 둘인 영감이 있다. 쨍하고 볕들어도 걱정, 비가 와도 걱정이다. 큰아들은 우산장수, 작은아들은 짚신장수다. 어떤 아들이 돈을 더 벌까? 물론 작은아들이다. 비오는 날보다 볕드는 날이 많으니까.

홍수가 나을까? 가뭄이 나을까? 홍수 지나간 자리는 개흙만 남는다. 그래서 가뭄이 낫다고 어른들은 말씀하신다.

농사에서도 그렇다. 작물에게 그래도 건조는 과습보다는 피해가 덜 하다. 과습은 생각보다 피해가 크다. 지난주에 전남의 한 고추 농가를 들렀는데, 고추가 시들시들했다. 물이 적어서 그런가 하고 흙을 보니, 너무 많이 주어 고랑으로까지 흘러나왔다.

주인은 고추가 시드니까 물이 모자란 것으로 판단해서 거의 하루걸러 점적관수를 해주었다. 그럼 물이 넘치는데 왜 잎이 시들까? 과습으로 뿌리가 죽어가서 물도 양분도 빨아먹지 못하기 때문이다.

뿌리가 하는 일은 물과 양분의 흡수 말고, 먹고 마신 만큼 수소이온(H+)을 배설하는 일을 한다. 이 모든 일을 하려면 힘(에너지)이 필요하다. 에너지는 잎에서 광합성으로 만들어 뿌리로 내려 보낸 당(糖)을 써서 하는데 당만으로는 안 된다. 당을 태울 산소가 필요하다. 그런데 흙속의 공간(공극)이 온통 물로 채워져 있어서 도무지 숨을 쉴 수가 없다. 뿌리가 질식해 죽어 가는 것이다. 이때 뿌리를 파보면 갈색으로 변해 있다. 시간이 더 흐르면 뿌리 주변의 미생물들이 덤벼들어 뿌리에 있는 당을 먹어치운다. 물과 양분을 빨아들이는 뿌리털이 썩거나 다 떨어져 나가고 곁뿌리도 썩는다. 주인은 뿌리가 죽어가서 물을 빨아들이지 못하는 사정도 모른 채 잎이 시드니까 계속 물을 준다. 가물어서 뿌리가 마를 경우는 물을 주면 1주일 안으로 회복되지만 과습으로 죽은 뿌리가 새로 나기까지는 2~3주나 걸린다.

어린 고추가 물을 먹으면 얼마나 먹을까? 새 발의 피만큼 먹는다. 그런데도 동이로 물을 준다. 이렇게 물이 많으면 환원 상태가 되고 흙에서는 인산은 불용화가 되고 질소는 가스가 되어 도망 나온다. 게다가 뿌리에 있던 칼륨이 밖으로 배출되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흙의 질소-인산-칼륨이 바닥으로 떨어진다.

그래서 며칠 말린 다음 물 1ℓ 이수소인산칼리(KH2PO4) 1.8g과 질산칼리(KNO3) 1.2g(도합 0.3%)을 타서 조루로 5m쯤 시험 삼아 주어본다. 효과가 나면 전면에 준다. 고추나 수박이나 참외 등 어떤 작물이나 매우 좋은 효과를 얻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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