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고 마시면 더 맛있는 와인스토리(17)

▲ 프랑스의 유명와인쇼핑몰에서 찾아본 샤또 마고(Chateau Margaux) 와인 가격. (사진제공 와인쇼핑몰 www.evinite.fr )

현실에서 와인가격은 허영심 보다는 
맛에 의해 움직이고 있다

“술과 친구는 오래된 것일수록 좋은 것 아닙니까?”라는 말에는 으레 이렇게 대답한다.
“개꼬리 3년 묵혀도 황모(黃毛)되지 않는다는 속담 아시죠?”
어떤 분야든 마찬가지겠지만 와인만큼 이 말이 꼭 맞는 경우도 없을 듯하다. 와인은 단순히 오래 됐다고 해서 그 가치가 높아지는 것은 아니다. 와인은 애호가들에게 기호식품인 동시에 수집의 대상이 되므로 오래되거나 생산량이 적어 희소성이 있으면 가격이 올라간다.

그러나 고가의 와인이 되기 위해서는 희소성뿐만 아니라 와인의 품질이 좋아야한다.  품질이 좋은 와인이 만들어지려면 포도가 좋은 땅과 적절한 기후에서 자라야 하며 농사꾼의 정성어린 관리와 양조자의 뛰어난 기술이 필요하다. 이렇게 만들어진 좋은 와인이 세상에 알려지게 되면 인기를 끌게 되고 가격은 상승한다. 찾는 수요에 비해 생산량이 부족하다면 가격은 더 빨리 올라가고, 세월이 지나 그 와인이 몇 병 남지 않게 되면 가격은 더욱 폭등하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품질이 좋지 않은 와인은 어떻게 될까.  
보통 그런 와인은 가격이 별로 오르지 않는다. 심지어 가격이 떨어지는 경우도 많다. 왜 그럴까?  
바로 ‘와인의 맛’ 때문이다. 대부분의 와인은 만들어진 직후에는 거친 맛에서 숙성을 거쳐 조금씩 맛이 부드러워지다가 언젠가는 균형이 무너지고 산화되어 식초처럼 변하게 된다. 차이가 있다면 품질이 좋은 와인은 산화되는 속도가 느려서 와인으로서의 좋은 맛이 오래 유지되고, 품질이 나쁜 와인은 급속히 산패된다는 것이다. 그런 이유로 품질이 좋은 와인은 처음에도 비싸지만 오랜 세월동안 가격이 상승하고, 품질이 좋지 않은 와인은 세월이 지나도 가격이 별로 오르지 않거나 오히려 내려가는 것이다.

와인애호가라면 한번 쯤 읽어봤을 만한 책 중에 ‘벤저민 월레스’의 ‘억만장자의 식초’라는 책이 있다. 한 잔에 2천만 원이 넘는 세상에서 가장 비싼 와인이 사실은 가짜이지 않을까 하는 의심을 파헤치는 과정이 잘 묘사되어 있다. 우리는 ‘억만장자의 식초’란 이 책의 제목을 통해 와인의 실체와 그것을 둘러싼 인간의 과시욕과 허영심을 들여다 볼 수 있다.

어차피 누군가의 밥상에 놓여 뱃속으로 들어가게 될 한 잔의 술이 수 천 만원이 넘는 가격에 거래 되는 것은 인간의 과시욕과 허영심 때문이 아니고서는 불가능한 일일 것이다. 한 때 네덜란드에서 튤립구근의 가격은 집 한 채의 값보다도 비쌌고, 중세 유럽에서 후추는 검은 금에 비유될 만큼의 비싸게 거래되었다지 않은가. 어느 순간 가격이 폭락하고 나니 튤립은 한 송이의 꽃일 뿐이고, 후추는 그저 요리에 뿌려질 한 줌의 향신료인 것을 알게 되는 것처럼.

▲ 김홍철 가평와인스쿨학과장

다행히도 우리의 현실에서 와인가격은 허영심 보다는 맛에 의해 움직이고 있는 듯하다. 사진은 프랑스의 유명와인쇼핑몰에서 찾아본 샤또 마고(Chateau Margaux)라는 와인의 가격인데, 특급와인으로 이름난 이 와인조차도 세월을 거스를 수는 없는 것인지 작황이 좋았던 1990년이나 1961년산에 비해 작황이 좋지 않았던 1958년산의 가격이 훨씬 낮은 것을 볼 수 있다. 오래된 와인으로서의 희소가치보다는 좋지 않은 작황과 맛에 대한 우려가 반영된 것이라 보여진다.

그나마 품질 순으로 매겨진 가격을 보고 약간의 희망을 발견한다. 명성과 세월과 희소성에 이끌리기 보다는 맛을 위해 지갑을 여는 애호가가 많을 때, 지금보다 맛있는 와인들이 더 많은 세상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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