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명인·명장열전 -지승공예가 신계원 옹

36년간 지승공예 기법연구·전승에 매달려

지승공예의 ‘지승(紙繩)’은 종이(지)와 노끈(승)을 말하는 한자어다. 지승공예는 종이를 좁고 길게 잘라 물에 적셔 새끼 꼬듯 엄지와 검지로 비스듬히 말아가며 비벼 꼬아 노끈을 만든 다음, 이것을 전통기법에 따라 날줄과 씨줄로 엮어 생활용품 등 여러가지 기물을 만드는 것을 말한다.

조선시대부터 민간에서 유행하면서 이어져 내려온 그 지승공예에 온 생의 절반 가까운 세월을 매달려 온 지승공예의 명인 신계원(申桂遠·80)선생을 대구광역시 수성구 범어동 자택의 1층에 있는 선생의 공방 솔가원에서 만났다. 네평 정도 되는 공방 안은 그동안 만들어 온 갖가지 모양의 작품들과 재료들이 빼곡히 들어차 있었다. 깡마른 작은 체구에 다소 강퍅(剛愎)해 보이는 인상의 선생이 지승으로 손수 짠 방석을 내놓으며 앉기를 권했다. 선생은 연신 “이 바람 불고 추운 날에 이까지 내려오시구…” 하며 안쓰러워 했다.

▲ 한지로 엮고 황칠을 한 항아리.

-지승공예란 게 주로 섬세한 여성들이 많이 할 것 같은데, 어떻게 처음 인연을 맺으셨습니까?
“지금까지 36년간 지승공예에 매달려 왔으니 40년 전 쯤의 일이오. 대구 경신학교에서 10여년 간 아이들에게 윤리를 가르치고 있었는데, 건강이 안좋아져 교단을 떠나게 됐지. 그 무렵 한 중앙 일간지에 못쓰는 고서(古書)를 비벼 꼬아 작품을 만드는 지승공예가인 고(故) 김영복 선생(당시 충청남도 무형문화재 제2호)의 인터뷰 기사가 실렸는데, 그 기사를 읽고 지승공예에 관심을 갖게 됐어요. 그래서 지승공예를 제대로 배우겠다 작심하고 당시 충남 홍성군 광천에 계시는 김영복 선생을 찾아갔지.”
그때 선생의 나이 마흔 네살. 선생은 광천 김선생댁을 내집 삼아 드나들며 1979년부터 1980년까지 만 2년 가까이 김영복 선생 문하에서 착실하게 기승공예 기초며 기법을 익혔다고 했다.

지승공예 재료는 고서한지 으뜸
사실 지승은 옛날엔 한가한 노인들이나 여인네들이 소일거리 삼아 폐지를 활용해 일상생활에 필요한 방석이며 소쿠리, 함지박, 망태, 짚신, 요강, 더 나아가서는 화병, 고비(편지 등을 넣어두는 벽걸이 사물함)등 소소한 집안 장식품들을 짬짬이 만들어 쓰던 것인데, 이제는 전통 문화유산으로 자리잡게 된 것이다. 특히 이 지승공예는 종이가 흔치 않았던 시절에 버리는 종이(한지로 된 고서)를 재활용해 일상 생활용품을 만들었던 옛 선조들의 지혜와 실용정신이 엿보이는 전통유산이라는 점에서 보존 전승의 의미가 크다고 할 수 있다.

▲ 각종 바구니 소품과 함지

-여느 종이도 만들 수 있을텐데 굳이 고서 한지를 고집하는 특별한 이유라도 있나요?
“우선 닥나무  섬유질이 밴 고서의 한지가 질기고 부드러운 질감을 가지고 있고, 먹물 글씨가 써 있는 한지를 비벼 꼬아 작품을 만들면 푸르듯 검은 듯한 연회색빛깔을 띄는 것이 여간 고상한 게 아냐. 생전 가도 일반 색지공예처럼 색깔도 바래지 않고… 그나마도 예전엔 고서는 커녕 한지 구하기도 쉽지 않았는데 요즘 질 좋은 한지를 얼마든지 구할 수 있어 여간 좋은 게 아냐.”
선생은 주름진 얼굴을 펴고 환하게 웃었다.

▲ 전통혼례때 쓰는 기러기 소품.

죽기 전 ‘무형문화재 지정’됐으면…
-경제적으로는 어려움이 많으셨을 것 같네요. 지승공예 작품이 제작시간 대비 큰 돈이 되지 않을 것 같은데…
“그렇긴 해. 한창 적에 완성된 작품 수십 점을 박물관에 몇천 만원에 판 적도 있었지만 이걸로 밥 먹긴 어렵지. 그래 젊은이들이 돈이 안되니 취미활동으로는 해도 기능을 전수받으려고 하지 않아. 이렇게 맥이 끊기면 안되는데 말야…”
1936년 경북 의성 태생인 선생은 어렸을 적 고향에서의 가난이 뼈가 시리도록 서러워 생각하기조차도 싫다고 했다. 가난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열심히 일했고, 그렇게 장만한 땅에 지금의 작은 건물을 올리고 집세를 받아 생활은 되니 부담없이 지승공예 작업에 매달릴 수 있었노라고 했다.

올해로 팔순인 선생은 그동안 한국종이접기협회 자문위원, 대한민국전승공예대전 심사위원(종이부문), 그리고 숱한 수상경력을 바탕으로 자타가 공인하는 지승공예 분야 최고 명인의 반열에 올라있음에도 노구를 불사하고 동분서주 하고 있다.
“대구광역시에 지승공예를 무형문화재로 지정해 줄 것을 여러차례 건의도 하고 담당자를 만나보기도 했는데, 돌아오는 대답들이 영 신통치 않아. 올해가 마지막이다 생각하고 한번 더 얘기할 참이지. 나 죽기 전에 지방문화재로 지정이라도 돼야 그나마 전승의 맥을 이어나갈 수 있을 거 아니겠소. 허, 참…”

지승공예 ABC
①만들 작품 크기에 따라 종이(한지)를 길게 자른다. ②실과 심 만들기. 좁고 길게 자른 종이를 비벼 꼰 실 두개를 노끈처럼 꼬아 만든 것이 기둥구실을 하는 심이다. ③색깔과 무늬 만들기. 요즘엔 색한지가 다양하게 있지만, 옛날에는 색지가 없어 치자, 쪽, 감, 황토 등의 천연염색재료로 종이를 염색해 썼다. ④겉칠. 물이 새지 않고 견고하게 하기 위해 함지박, 요강 등에는 옻칠을 하고, 그외 장식품에는 황칠을 해 나무결 같은 색깔을 낸다. ⑤도구:재료를 베는 칼과 엮고 꿸때 쓰는 송곳, 그외 칠 도구 등.

저작권자 © 농촌여성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