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균 농협중앙회 농업박물관장

▲ 김재균 농협중앙회 농업박물관장

"오천년 농업역사를
가진 우리민족은 협동정신이 배어있는
농경문화를 형성해 왔고,
오늘날 우리들 정신세계에
큰  영향을 주고 있다."

아프리카 속담에 “혼자 가면 빨리 갈 수 있지만, 함께 가면 멀리 갈 수 있다”라는 말이 있다. 요즘 많은 사람들이 협동의 힘을 강조할 때 자주 인용하곤 한다. 또 각종 스포츠나 게임 등에서도 선수들이“다른 동료와 함께 해서, 동료들이 도와 줘서 힘들지 않고 좋은 결과를 얻었다”며 협동의 효과를 말하기도 한다. 이처럼 협동에는 단순히 산술적인 플러스 효과 외에 측정키 어려운 초능력이 숨어 있다.

이런 협동정신의 뿌리는 농경문화에서 찾을 수 있다. 오랜 농업사회를 통해 축적된 농경문화에는 협동과 나눔, 배려의 정신이 녹아 있는 것이다. 특히 요즘처럼 개인주의가 팽배해지고 이해타산에 매몰돼 있는 상황에서는 이런 전통농경문화의 정신이 더 절실히 요구된다고 할 수 있다.
오천년 농업역사를 가진 우리민족은 협동정신이 배어있는 농경문화를 형성해 왔으며, 이는 오늘날 우리들에게 정신세계에 큰 영향을 주고 있다.

철저한 농업국가요 농경민족인 우리들에게는 농업적 사고와 습관들이 쌓여 농업DNA가 형성돼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런 유전인자들이 1960년대 이후 시작된 산업화 조류에 밀려 혼란을 겪으면서 큰 변화를 가져왔다. 의식구조는 농업인데 환경은 2, 3차산업이고 도시인 것이다. 농업에 대한 인식도  바뀌었다. 오로지 경제적 잣대로 농업을 평가하게 되면서 농업이 가지고 있는 정서적, 정신적 가치는 도외시된 채 경제적 효율성만 추구하게 되었다. 이는 곧 환경 파괴와 농촌공동체 해체로 이어졌다.

농업경시 풍조에서 비롯된 이런 현상들은 삶을 피폐하게 만들었다. 이런 사실들은 다음 자료에서 더욱 명확해 진다. 2014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발표한‘더 나은 삶의 지수(The Better Life Index)’를 보면 우리나라는 34개국 가운데 25위로 최하위권을 기록했다. 특히 공동체 지수는 최하위인 34위였다. 가장 한국적인 전통문화라 할 수 있는 협동과 어울림, 나눔, 인정의 문화가 사라진 것이다.

그러나 절망만 할 상황은 아니다. 최근 여러가지 면에서 농업에 대한 희망의 싹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귀농인구가 증가해 농촌지역에 새로운 활력소가 되고 있으며, 이들을 주축으로 새로운 공동체문화가 형성되고 있다. 일부 지역에서는 고소득을 올리는 농가들이 많이 생겨나는 등 농촌이 희망의 땅으로 뜨는 곳도 있다. 또한 건강과 장수에 관심이 고조되면서 자연생태를 보호하면서 건강한 농산물을 생산하려는 풍토가 확산되고 있다.

이제 농업은 사양산업이 아니다. 지난해 한국을 방문한 미국 월가의 세계적인 투자가인 짐 로저스는“MBA대신 농업을 공부하라. 농학학위는 당신을 부자로 만들어 줄 것이다.”라며 농업이 진정한 미래산업이 될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이에 앞서 우리나라에서도 이미 90여년 전에 윤봉길 의사가“농업은 인류의  생명창고” 라며 농업의 중요성을 간파한 바 있다.

3월 5일은 우리 조상들이 설날에 버금가는 큰 명절로 여긴 대보름날이다. 농업시대에는 연간 세시행사의 절반이상이 정월에, 정월행사의 절반이상이 대보름날에 행해졌을 정도로 이날은 우리에게 매우 의미있는 날이었다. 농경사회의 세시행사가 기본적으로는 풍요와 안녕을 기원하는 것이지만 협동의 바탕 위에 나눔과 배려, 베풂의 정신이 깃들어 있다고 할 수 있다. 올 대보름날은 사회를 하나로 묶고 더불어 함께 잘살고자 했던 조상들의 농경문화 정신을 되새기며 농업의 가치를 다시 생각해 보는 날이 됐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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