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고 마시면 더 맛있는 와인스토리⑮

“코르크차지는 맛있는 음식에
 자기 와인을 즐길 수 있고,
 음식점에는 최소한의 수익을
 만들어주는  훌륭한 장치다”

식당 간판에 “소주, 가져와서 드셔도 됩니다.”라고 적힌 곳이 있다면 근처 마켓에서 소주를 사들고 식당으로 들어갈 수 있다.

해외의 식당 앞에는 이와 비슷한 BYOB(Bring Your Own Bottle)라는 글귀가 적혀 있는 경우가 있다. “술은 가져오세요.”라는 뜻의 이 말은 주류 판매에 대한 허가를 얻기 어렵거나 세금이 비싼 지역에서 가끔씩 볼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일반음식점으로 영업등록을 하면 내부에서 소비되는 술은 기본적으로 판매할 수 있기 때문에 식당주인 입장에서는 술을 가져오는 손님이 반가울리 없다.

여러 가지 술중에서도 와인은 특히 취급하기 불편한 술이다. 적당한 와인잔과 디캔터, 코르크스크류 등 여러 가지 도구도 필요하고, 보관과 음용에 적당한 온도관리까지 해주려면 소믈리에를 따로 고용해야할 만큼 일이 많다.
거기에 적절한 마진까지 붙인다면 와인은 소비자들이 싸게 마시기는 어려운 술이 되어버린다. 그래서 드물지만 BYOB가 가능한 음식점은 와인애호가들에게 아주 유용한 장소가 된다. 이런 곳에 자기 와인을 가져가는 경우에 와인잔 사용과 종업원의 수고를 고려해 지불하는 서비스비용을 코르크차지(Cork Charge) 또는 콜키지(Corkage)라고 부른다.

코르크차지는 음식점에 따라 그 기준이 다르다. 손님의 수나, 제공하는 와인잔의 개수에 따라 매겨지기도 하고, 와인의 병수에 따라 매겨지기도 한다. 음식점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1병당 2~3만원 정도가 보통인 것 같다. 최근에는 콜키지프리데이(Corkage Free Day)를 정해 특정 요일에는 비용을 받지 않거나, 항상 콜키지프리인 곳도 있으니 방문 전에 콜키지 관련 정보를 알아보도록 하자.

“내가 내술 가져가서 마시는데 돈을 내야 하냐”고 반문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이 코르크차지야말로 손님에겐 맛있는 음식과 자기 와인을 함께 즐길 수 있는 편의성을 주고, 음식점 측에는 최소한의 수익을 만들어주는 훌륭한 장치이다. 역지사지(易地思之)라고 하지 않던가. 업주는 손님의 마음을 이해하고, 손님은 업주의 마음을 이해했을 때만 그 관계는 지속될 수 있다.

돌이켜보면 필자에게도 코르크차지와 관련된 웃지못할 기억들이 있다. 주머니가 지금보다 더 가벼웠던 시절, 어떻게든 싸게 마셔보려고 업주와 흥정도 하고, 다섯 명이 잔 하나로 마시는 꼼수도 써보았다. 심지어 친구들과 함께 식당 주인 몰래 와인병을 숨겨서 마시다가 들켜서 쫓겨난 적도 있으니 해볼 건 다 해본 셈이다.

그러나 정말로 후회되는 일은 따로 있다. 집 근처에 유난히 맛이 좋았던 불닭집이 있었는데 와인을 가져와서 마셔도 좋다는 주인장 덕분에 몇 차례 와인을 가져가 불닭과 꼼장어를 안주삼아 맛있게 마셨었다. 점차 그 횟수가 늘어가고 익숙해질 무렵, 여느 때처럼 염치 좋게 와인 두병을 챙겨들고 손님까지 대동하고 가게로 들어서던 어느 날 주인장의 문전박대가 쏟아졌다. “아뿔사, 여태까지 할 수 없이 참아주고 있었던 것이었구나.”하는 생각과 함께 부끄러움과 후회가 밀려왔다. 그 후로 한동안 그 곳에 갈 수 없었던 이유는 주인의 문전박대 때문이 아니라, 나의 눈치 없음과 아둔함에 대한 부끄러움 때문이었다.

▲ 김홍철 가평와인스쿨학과장

오랜 시간이 지나 그 집을 다시 찾기는 했지만 예전의 기분으로 돌아가기는 쉽지 않았다.  이 사건을 교훈삼아 나는 값이 저렴한 음식점에서 와인을 가져와서 마시도록 해주면, 소줏값 정도 더 얹어서 계산하는 버릇이 생겼다. 주인이 만류해도 나는 굽히지 않는다. 그것이 업주를 위한 것이 아니라 내가 손님으로서 그곳을 오랫동안 찾아갈 수 있는 방법임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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