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고 마시면 더 맛있는 와인스토리⑫

▲ 2005년산 샤또 마고 빈티지.

빈티지는
해당년도의 포도 작황,
와인의 생산이력을
추적하는 정보

같은 상표의 와인이라도 빈티지에 따라 많게는 몇 배까지 가격의 차이가 나게 된다.
와인은 농산물인 포도를 원료로 만들어진다. 그러므로 포도가 생산되는 조건에 따라서 와인의 품질도 달라지는데,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요소는 포도산지의 기후와 토양, 그리고 생산자라고 할 수 있다. 천(天), 지(地), 인(人)으로 대표될 수 있는 이 요소들에 의해서 와인의 품질은 좋아지기도 하고 나빠지기도 한다.

해마다 조금씩 달라지는 기후의 차이에 땅도 영향을 받아 포도의 생육작황이 달라지며, 이에 대해 생산자가 대응하는 수확과 양조방식도 약간의 차이를 갖게 된다. 결과적으로 이 모든 요소들의 변화 때문에 와인의 품질도 해마다 차이를 보이게 되며, 품질의 차이는 가격에까지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친다. 그런 이유로 대부분의 와인에는 포도의 수확년도가 상표에 기재되어 있는데, 이를 빈티지(Vintage)라고 하며 불어로는 밀레짐(Millesime)이라고 한다. 빈티지는 해당년도의 포도 작황이나 와인의 생산이력을 추적하여 품질이나 숙성정도를 가늠할 수 있게 해주는 중요한 정보가 되며, 같은 상표의 와인이라도 빈티지에 따라 많게는 몇 배까지 가격의 차이가 나게 된다.

빈티지 이야기를 할 때 자주 받게 되는 질문은 “작황이 좋은 해에는 풍년이니까 가격이 싸지 않나요?”라는 것인데, 답은 “NO”이다. 작황이 좋다는 말은 수확량이 많다는 뜻이 아니라 포도의 품질이 좋다는 뜻으로 해석해야 한다. 실제로 대부분의 와인 생산자국들은 와인의 품질저하를 막기 위해 단위면적당 포도의 수확량을 법으로 제한하고 있기 때문에 작황이 좋다고 해서 와인이 많이 생산되지도 않으며, 오히려 여름부터 수확기까지 뜨거운 태양이 비추고 가뭄이 들었던 해에 좋은 와인이 만들어지므로 이런 해를 최고의 빈티지로 꼽는다.

반대로 작황이 나쁜 해는 여름부터 수확기까지 비가 많이 오고 일조량이 부족해 포도가 잘 익지 않는 경우인데 당연히 와인의 품질이 나빠질 수밖에 없지만, 특급와인 생산자들은 솎아내기를 통해 평년작의 절반 이하로까지 수확량을 줄여서 남은 포도에 영양분을 몰아주는 방식으로 와인의 품질을 지켜낸다. 지역별로 차이는 있겠지만 최근 100년간 전체적으로 작황이 좋았던 해를 꼽자면 1945년, 1961년, 1982년, 1990년, 2000년, 2005년, 2009년 등이다. 와인에 심취한 애호가라도 세계각지의 연도별 포도작황을 모두 암기하는 것은 힘든 일이므로 그림과 같이 연도별, 지역별 포도 작황이 기록된 빈티지차트를 하나쯤 가지고 있으면 유용하다.

“와인은 오래된 것일수록 비싸지 않습니까?” 라는 질문에는 한마디 덧붙여 대답해야 한다. “예, 빈티지가 좋은 와인은 오래될수록 비쌉니다.” 와인도 희소성의 영향을 받기 때문에 오래되고 적게 남아있는 와인일수록 비싸지는 경향이 보이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맛없는 와인을 먹고 싶은 사람은 없을 테니, 빈티지가 좋지 않은 와인은 오래 되어도 가격이 별로 오르지 않는다. 실제로 최고의 빈티지였던 2005년산 샤또 마고(Chateau Margaux)의 해외가격은 200만원정도이지만 작황이 좋지 않았던 1969년산은 70만원 정도에 거래되고 있다.

▲ 김홍철 가평와인스쿨학과장

빈티지에 따른 가격의 차이는 유럽와인에서 더 심하게 나타나는데 이는 호주, 칠레, 미국, 아르헨티나 등 신세계 와인생산국들의 안정적인 기후에 비해 변화가 심하고 불안정한 유럽의 기후 탓이라 할 수 있다. 농업과 양조기술의 발달로 빈티지에 따른 와인의 품질 편차는 줄어들고 있지만 빈티지의 개념은 앞으로도 없어지지 않을 것이다. 그 이유는 와인애호가들은 와인의 다양성에 심취한 사람들이며 항상 새로운 와인을 갈망한다. 와인생산자가 매년 같은 이름의 와인을 만들면서도 애호가들의 욕구를 만족시킬 수 있는 이유는, 같은 이름의 와인이라도 빈티지가 다르면 별개의 와인이라는 정체성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가끔씩 연도표시가 없는 와인도 있는데 이는 서로 다른 빈티지의 와인을 혼합해서 만든 것이라고 보면 된다. 만약 Since, Found, EST 등의 단어와 함께 쓰인 경우라면 포도의 수확년도가 아니라 와인제조회사의 설립년도를 표기한 것이니 오해가 없으시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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