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알고 마시면 더 맛있는 와인스토리⑩

▲ 와인잔의 종류. (사진 왼쪽부터) 레드와인잔(부르고뉴타입), 레드와인잔(보르도타입), 스파클링와인잔, 화이트와인잔, 셰리, 포트

술잔에는 과학의 비밀이 담겼다

▲ 호주 와인의 Standard Drinks 7.7(한병을 7.7잔에 나눠 따르라는 뜻)

“총 안들고 전쟁에 나갈 수 있나요?”
진짜 전쟁이 아니라 생활 속에서도 우리가 흔히 하는 얘기다. 전장에서 병사에게 필요한 기본적인 무기가 소총이라면, 술자리에서 술꾼에게 필요한 최소한의 무기는 술잔이다.
며칠 전 필자가 와인모임에 가려고 커다랗고 네모진 가방을 들고 집을 나서는데 “어디 사진 찍으러 가세요?”하는 앞집 아저씨의 인사를 들었다. 차마 술 마시러 간다고는 말하지 못하고 당황했던 기억이 난다. 고급카메라가 들어 있음직한 가방 안에 실은 술잔만 종류별로 잔뜩 들어있었으니 속으로는 웃음이 절로 났다. 오죽 술을 좋아하면 잔까지 챙겨들고 술을 마시러 다니겠냐고 하는 분들도 있겠지만 술꾼에게도 그럴 만한 사정이 있다.

예전보다 와인이 대중화됐지만 서울과 대도시의 일부지역을 제외하면 아직도 우리 주위에서 와인을 편하게 마실만한 식당을 찾기란 쉽지 않다. 맛있는 음식과 함께 와인을 한잔 하려고 어렵게 식당에 양해를 구하더라도 와인잔은 준비 되어있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이다. 아무 잔에나 마시면 되는 것이라 생각할지 모르지만, 술이란 모름지기 그 종류에 맞는 잔이 있기 마련이다. 그럼 술잔 속에 숨겨진 과학을 들여다보자.

술은 중추신경을 억제하는 탓에 음주자는 술의 종류에 맞춰 자신의 음주 습관을 바꾸는 것이 쉽지 않다. 그런 이유로 우리가 사용하는 대부분의 술잔들은 기본적으로 한잔에 약 10g정도의 알코올이 함유되도록 설계되어있다. 몇 가지 예를 들면 소주잔은 2온스(약60ml) 용량으로 알코올도수 20% 기준이라면 60ml×20%=12ml(무게로는 9.5g) 정도의 알코올이 담기게 된다. 최근 들어 소주의 알코올함량이 낮아졌지만 불과 몇 년 전만 하더라도 한 잔에 알코올 10g이 좀 넘게 담길 형편이었다. 맥주잔은 250ml 용량에 4~5% 이므로 역시 한잔 속의 알코올 함량은 10g 내외가 되며, 위스키도 스트레이트잔에 알코올 40% 정도의 위스키 1온스(약30ml) 정도가 담기므로 알코올 기준으로 약 10g이 되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한마디로 어떤 술이든 적당한 잔으로 한잔을 마신다면 취하는 효과는 모두 비슷하도록 만들어진 셈이다.

그럼 와인은 어떨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와인도 다른 술과 마찬가지로 한잔에 10g의 알코올이 들어갈 정도로 채우는 것이 좋다. 그러나 와인잔은 채워야할 와인의 양에 비해 매우 크게 만들어져 있는데다, 와인의 종류에 따라 서로 다른 크기와 모양을 사용하게 되므로 서빙 할 때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
레드와인의 경우 보통 500ml 이상의 큰 글래스가 사용되지만 실제로 제공할 와인의 양은 100ml 내외 정도가 적당하다. 그럼 왜 가득 채우지도 않을 거면서 그렇게 큰 잔을 만들었냐고? 답은 향기에 있다. 술이 담긴 부분을 제외한 나머지 공간은 바로 향기를 위한 공간이다. 와인을 적당히 채운 잔을 빙글빙글 돌려 소용돌이를 만들어보면 와인이 묻은 넓은 부분에서 풍부한 향기가 발산되고 잔 속의 빈 공간에 향기가 가득 모이게 된다. 재미있게도 채워진 와인의 양이 적을수록 향기의 발산면적과 모이는 공간도 커져서 더욱 풍부한 향기가 만들어지는 현상이 생긴다. 이런 이유로 레드와인에는 가장 큰 잔이 사용된다.
화이트와인은 레드와인에 비해 탄닌도 적을 뿐더러 상큼한 맛을 잘 살리기 위해 차갑게 서빙 되므로 레드와인잔보다 다소 작은 300~400ml 정도의 잔이 많이 사용된다.

샴페인과 같은 스파클링와인에는 와인 속에서 올라오는 기포를 감상하기 좋게 만들어진 가늘고 긴 풀루트형 잔이적당하고, 셰리나 포트같이 알코올 함량이 높은 와인이나, 귀부와인처럼 단맛이 많은 와인은 한 번에 많이 마시기 좋지 않으므로 좀 더 작은 잔이 많이 쓰인다.

▲ 김홍철 가평와인스쿨학과장

자, 이제 적당한 와인잔을 선택했다면 그 다음 해야 할 일은 와인을 채우는 것인데, 앞서 얘기한 10g의 법칙은 건강을 위해서든, 와인의 풍미를 위해서든 좋은 방법이 될 듯하다. 일반적으로 알코올함량이 13~14% 정도라면 8잔 정도에 나누어 따르면 된다.
좋은 예로 호주와인을 보면 뒷면에 “Standard Drinks 8” 등으로 표기된 문구를 볼 수 있는데 이는 “한잔에 알코올이 10g정도 되게 하려면 한 병을 8잔에 나눠 따르시오”라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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