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한 사이 3년간 치열하게 치뤘던 6·25 한국전쟁이 휴전된 지 56일 만인 1953년 9월21일 김포공군기지에 북한 노금석 소위가 미그-15기를 몰고 귀순했다.
당시 우리정부는 노금석 소위 귀순대회를 대대적으로 개최하며 크게 환영했다. 그리고 신문들은 대서특필 하면서 장안이 떠들썩했다.

노금석 소위를 크게 환영한 이유를 살펴보자. 당시 미국의 전투기인 F-864세이버기는 소련의 미그-15기에 비해 성능이 크게 뒤져 제공전(制空戰)에서 크게 밀렸었다. 미그-15기는 1947년 12월30일 시험비행 시 스탈린 총리의 극찬을 받았었다. 그 후 6·25 한국전쟁에 투입돼 제공권을 장악하며 우리를 많이 괴롭혔다.
미국은 뛰어난 성능과 세련된 디자인을 갖춘 미그-15기를 입수해 성능과 비행평가에 다급했다. 미그-15기의 잦은 출격 저지가 절실했기 때문이다.

이에따라 동경에 있던 UN군사령부 심리작전본부에서는 미그-15기를 몰고 귀순해 오는 조종사에게 10만 불의 보상금을 주겠다는 전단을 북한에 살포했다.
10만 불. 지금은 적은 돈이지만 당시 우리국민 1인당소득 150불이었던 것에 견주면 큰돈이었다. 전단지 살포 후 북한측의 미그-15기 출격이 크게 줄어들어 심리적으로 공중전 약화에 큰 전과를 올렸다. 비록 노금석 소위가 휴전 뒤 늦게 귀순했지만 미국의 공군전투기 개선에 큰 기여를 했다.

최근 우리 시민단체의 북한으로의 전단지 살포를 두고 남북정부간 심리적 논란 첨예하다. 또한 남남 시민단체 간에도 갈등이 크게 일고 있다. 전단지 살포에 따른 북한측 대응에 관심이 크다.

저작권자 © 농촌여성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