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광희 기자의 ‘세상만사’

‘지상(地上)에는/ 아홉켤레의 신발./ 아니 현관에는, 아니 들깐에는/ 아니 어느 시인의 가정에는/ 알전등이 켜질 무렵을/ 문수(文數)가 다른 아홉켤레의 신발을.// 내 신발은 십구문 반(十九文半)/ 눈과 얼음의 길을 걸어,/ 그들 옆에 벗으면/ 육문삼(六文三)의 코가 납짝한/ 귀염둥아 귀염둥아/ 우리 막내둥아/ 미소하는/ 내 얼굴을 보아라./ 얼음과 눈으로 벽(壁)을 짜 올린/ 여기는/ 지상./ 연민(憐憫)한 삶의 길이여./ 내 신발은 십구문 반// 아랫목에 모인/ 아홉마리의 강아지야,/ 강아지같은 것들아./ 굴욕과 굶주림과 추운 길을 걸어/ 내가 왔다/ 아버지가 왔다/ 아니 십구문 반의 신발이 왔다./ 아니 지상에는/ 아버지라는 어설픈 것이/ 존재한다./ 미소하는/ 내 얼굴을 보아라.’

청록파 시인 박목월(朴木月)이 1968년 내놓은 <<경상도 가랑잎>>이란 시집에 실린 시 <가정(家庭)>의 전문이다. 중학교 국어교과서에도 실려 있는 이 시는 하루의 힘겨운 일상을 마치고 귀가하는 아홉명의 아이를 둔 한 소시민 가장(시인)의 일상을 그린 것이다. ‘집’의 위기상황 속에서도 ‘가정’의 가치를 소중하게 지켜가는 가장의 꿋꿋하고도 아름다운 가족애를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여기에서 참고로 신발의 크기를 말하는 1문은 2.4cm다.)
그런가 하면 <가을의 기도>의 시인 김현승은 그런 우리들의 아버지를 <아버지의 마음>이란 시에서 이렇게 그렸다.

‘세상이 시끄러우면/ 줄에 앉은 참새의 마음으로/ 아버지는 어린 것들의 앞날을 생각한다/ 어린 것들은 아버지의 나라다.- 아버지의 동포다.’
문병란 시인의 <아버지의 귀로>는 또 어떤가.
‘서천(西天)에 노을이 물들면/ 흔들리는 버스 속에서/ 우리들은 문득 아버지가 된다/…/ 까칠한 주름살에도/ 부드러운 석양의 입김이 어리우고,/ 상사를 받들던 여윈 손가락 끝에도/ 십원짜리 눈깔사탕이 고이 쥐어지는 시간/…/ 무너져 가는 가슴을 안고/ 흔들리며 흔들리며 돌아오는/ 그 어느 아버지의 가슴 속엔/ 시방/ 따뜻한 핏줄기가 출렁이고 있다.’

요즘 그런 아버지 마음으로 생활고로 아내가 가족을 버리고 집을 나가자 두살, 네살박이 아이 둘을 데리고 길 위에서 살아가고 있는 스물다섯살 젊은 아버지의 이야기가 한참 인터넷을 달구고 있다. 빵 하나, 삶은 계란 하나로 허기를 달래면서도 ‘대한’이란 이름의 그 젊은 아버지는 자신의 아이들을 포기할 수 없다고 했다. 다만 “아빠가 미안해”란 말 밖에는 할 말도 없다고 했다. 무심한 계절은 겨울로 치닫고 있는데, ‘길 위의 가족’ 세 부자는 아직도 길위 시린 바람 속에 서 있다. 그렇게 우리사회의 많은 가족들이 해체되며 거리로 내몰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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