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4 다문화특별기획 - 해피투게더 :베트남 출신 트란 티 씨(영월 주천)

역경딛고 일어선 ‘똑순이’ 베트남댁 이야기

▲ 영월군다문화사랑연합에서 한글심화과정을 배우는 트란 씨. 사진촬영을 한사코 거부한 남편은 트란 씨의 맞은편에서 환하게 웃고 있었다.

성실해진 남편 손잡고
이젠 행복의 나무 심을 터

강원도 영월 주천에 사는 베트남 출신 트란 티(26)씨는 온갖 역경을 이겨내고 남편을 개과천선시킨 ‘똑순이’ 형 여성이다.
트란 씨는 지난 2009년 고향 하노이의 한 중개업소를 통해 한국인 남편 이 모씨(41)를 만났다. 선하고 성실해 보이기만 했던 남편은 그러나 한국에 오자마자 돌변해 가장으로서의 책임을 저버린 채 인근 강원랜드 카지노에 들락거리기만 했다.
트란 씨의 쓰라린 한국생활 3년 그리고 희망을 갖기 시작한 2년의 이야기다.

희망의 싹은 무참히
곧 무너져 버릴 것 같은 집과 종일을 일해야 겨우 먹고사는데 만족해야하는 손바닥 만 한 논의 쌀농사. 가난도 싫고, 가난하기 때문에 서로를 들볶으며 사는 집 안도 싫었다.
한국에 가서 힘들게 사는 베트남 여성들도 많지만 행복한 가정을 꾸리고 윤택한 생활을 한다는 한국행 이주여성들의 이야기만 귀에 들어왔다.
하노이 시내에 있는 결혼소개소를 찾아, 트란 씨 수준에서는 거금을 주고 한국남자를 소개받았다. 인터넷으로 사진을 봤더니 한류스타 장동건 못지않은 미남에 소도 수백 두 키우고 콩 농사도 꽤 규모가 크다고 들었다.
8개월 동안 열심히 한국어수업을 들은 후 남편이 베트남을 방문해 속전속결(?)로 결혼식을 치루고 한국에 따라나섰다. 부모님과 가족들도 좋아하며 이들 신혼부부를 축복했다.
그게 2009년 11월이니 조금 있으면 만 5년이다.
남편의 집은 뭔가 좀 이상했다.
축사의 소는 4마리가 전부였고 콩밭은 차일피일 미루며 구경시켜주지도 않았다.
희망의 싹이 무참히 잘리는 데는 한 달이면 족했다.

끝이 안 보이는 터널
“정말 비참한 생각이 들었어요. 얼마나 힘들게 마련한 결혼 소개자금인데... 그리고 한심한 남편의 처지도 저를 미칠 것같이 힘들게 만들었죠. 다시 돌아갈 수도 없고, 어디로 도망가서 동포를 만나 시간제 일이라도 해야 할까...고민이 많았죠.”
그나마 위안이 되는 것은 남편의 심성이었다.
분명히 속이기는 했지만 난폭한 성격은 아니었고 이웃들과도 잘 지냈다.
어느 날 앞집에 사는 할머니가 저를 보며 “불쌍한 것. 남편이 뭐하고 다니는지도 모르고..”라고 말했다. 처음에는 그 뜻을 잘 몰랐고 혹시 남편이 다른 여자를 만나고 다니나하는 의심이 들었다.
남편이 도박에 빠져 카지노에서 살다시피 한다는 이야기를 이웃 아주머니에게 들었다.
아주머니는 “그렇게 성실하고 착실하던 사람이 왜 저렇게 됐지?”라며 안타까워했다.
아무리 애원하고 부탁해도 남편은 돈만 생기면 어떻게든지 카지노로 향했다. 처음 말한 규모는 아니지만 조그만 한 콩 밭도 거의 내팽겨 치기 시작했다.
모든 농사는 트란 씨가 지어야했고 소도 트란 씨가 먹여야 했다. 정말 끝이 안 보이는 터널 같았다.

다시 보이는 햇살
동네 어른들과 남편을 설득하고 애원하기를 반복하는 생활이 3년이 흘렀다.
눈물, 호소, 탄식, 잦은 다툼, 그리고 화해가 반복되는 기나긴 시간이었다.
그 사이 아들도 생겼다. 아들이 태어나자 남편은 긴 한숨을 쉬면서 자신을 자책했으나 그래도 쉽게 도박에서 헤어나지를 못했다.
동네 이장님과 함께 다시 남편을 설득했다.
남편은 눈물을 보이며 ‘도박중독 클리닉’을 듣겠다고 했다. 남편은 트란 씨를 만나기 3년 전 친구 빚보증을 잘못 섰다가 큰 손해를 봤고 재산 대부분을 처분해야 했다. 친구가 곧 해결된다는 말만 믿고 결혼까지 서둘러 트란 씨를 너무 힘들게 했다며 어린아이처럼 엉엉 울었다.
들썩이는 남편의 어깨가 가여워보였다고 한다. 트란 씨는 인근 콩 가공 공장과 박스공장, 농산물 포장공장들에 다니며 억척스럽게 일해 돈을 모았다.
남편은 도박중독클리닉을 다니면서도 카지노에 들락거리기는 했으나 횟수는 현저히 줄어들었다. 매일가다시피 하던 것이 일주일에 한 번 보름에 한 번, 한 달에 한 번으로 줄어들었다. 희망이 보이기 시작했다.

같은 곳 바라보기
그러던 중 남편은 2년 전부터 완전히 도박을 끊고 다시 열심히 농사일에 매달렸다.
거의 다 팔아버린 소와 뭉텅뭉텅 없어져 버리던 땅들을 복구하기에는 아직 갈 길이 멀지만 트란 씨 부부는 이제 손을 맞잡고 새로운 인생을 개척하고 있다.
남편은 말했다. “트란! 부부란 살아가며 같은 목표를 바라보며 걸어가는 거래. 이제부터 열심히 일해서 우리가족 꼭 행복하게 해 줄게.”
트란 씨는 이웃 농가의 일을 도우며 농사일도 배우고 일당도 받고 있다.
트란 씨는 곧 농협과 다문화가족지원센터에서 지원하는 각종 교육들-농업교육, 한국어 심화과정, 컴퓨터 중급과정-과 내년초 실시될 농업기술센터 새해영농교육에도 참가할 예정이다.
트란 씨는 가난이 싫어 한국에 왔지만 남편의 도벽으로 숱한 마음고생을 겪었다.
다시 성실한 가장으로 남편이 돌아오기까지는 트란 씨의 착한 심성과 진득한 내조의 덕택이 아닐 수 없다. 트란 씨 가족은 이제야 'O(제로) 베이스‘에 섰다.
트란 씨 부부는 여기에 풍성한 수확을 내는 행복의 나무를 심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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