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광희 기자의 ‘세상만사’

이 지구상에서 유사 이래 가장 길고도 장황한 유언장은 저 고대 중국 삼국시대에 촉한의 재사 제갈량이 북벌을 앞두고 눈물로 써내려간 <출사표(出師表)>이지 싶다. 촉한의 초대 황제인 유비와 ‘삼고초려(三顧草廬)’의 예로 군신(君臣)의 연을 맺은 제갈량이 유비가 죽고 난 뒤 그 뒤를 이은 유비의 아들 유선에게 북벌에 앞서 자신의 나라를 염려하는 마음을 624자에 담아 올린 글이다.

중국의 3대 명문(名文)의 하나로 일컬어지는 이 <출사표>에는 선왕에 대한 충성심과 그 대를 이은 후주에 대한 애정어린 충고, 그리고 나라에 대한 절절한 걱정과 출정을 앞둔 비장함이 담겨 있어 ‘제갈량의 출사표를 읽고 눈물을 흘리지 않으면 남자가 아니다’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후세인들의 가슴을 뒤흔들었다.
‘신 제갈량이 아룁니다…’로 시작되는 이 <출사표>에는 제갈량의 인간적 편모를 엿볼 수 있는 이런 구절도 있다.
‘저는 성도(成都)에 뽕나무 800그루와 마른밭 15경(삼국시대 1경은 약16000평)이 있으니 소신의 가족이 살기에는 충분합니다. 저 자신은 군대 내에서 관급으로 의식주를 해결하고 있으니 사재(私財)를 모을 필요가 없습니다.’

그런가 하면, 우리나라 조선조의 마지막 황후인 순종비 윤(尹)황후는 1966년 2월3일 73세로 타계하기 1년 전인 1965년 봄(을사년 춘절) 친필 언문 붓글씨로 자신의 마지막 생각을 정리해 영친왕비인 이방자에게 남겼다.
‘남은 여생을 오즉 불젼에 귀의 허며 세월을 보내든 중 뜻허지안은 육이오 동란을 당허여 한층 더 세상이 허망험을 늣기였든 중 내 나이 칠십여세 되오니 불세계로 갈 것 밧게는 업서 내 뜻을 표허나니, … 형편에 따라 장례일을 허되, 불식으로 간단히 허며, 염불소리 이외에는 조용히 허며, 소리내어 우는 자는 내뜻을 어기는 자이며, … 수족것치 불이든 상궁들도 조반석죽(朝飯夕粥)이라도 마련해 주고… 부디 진심으로 부탁허며, 사후에라도 욕됨이 업게 처리 잘 허길 부탁허나니…’

열세살 어린 나이에 황태자비로 궁궐에 들어가 1926년 순종 승하 후 40년간 홀로 불운한 시대를 고독속에 살다간 조선조 마지막 황후의 담담하면서도 고결한 심경이 그대로 드러나 있다.
요즘 스마트폰에 자필로 유언장을 쓰고 동영상까지 찰칵 찍어두는 ‘스마트폰 유언장’이 70~80대 자산가 노인들 사이에 유행하고 있다고 한다. 일종의 ‘녹음유언’인 셈이다. 많거나 적거나 상속재산문제로 자녀들간에 칼부림나는 꼴을 더는 못보겠대서 나온 유언형식이라고는 하나, 이 지경까지 온 지금의 물신들린 세태가 한심스럽기까지 하다.

저작권자 © 농촌여성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