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훈동 수원예총 회장·시인

▲ 김훈동 수원예총 회장·시인

"가족의 모습이 어떠하든
가족 간의 유대와 신뢰는
더 강화되고 정서적인 안정은
더 깊어져야 한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늘 한가위만 같아라.’ 추석에 가장 많이 듣는 말이다. 먹고 사는 게 가장 어려운 문제였던 시절에 추석이란 개념 속에는 이토록 후(厚)한 마음씨가 자리했다. 피땀으로 가꾼 곡식이 영글고 갖가지 과일이 풍성해 인심마저 후해지는 명절이었기에 그렇다. 1년 365일이 추석날처럼 살기좋은 날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이런 속담이 생겨난 듯하다.
올해는 추석이 빨라 곡식이나 과일이 채 영글지 않아 농민들의 마음을 애태운다. 해마다 겪는 일이지만 고속도로가 고향을 찾는 애틋한 마음들의 차량으로 뒤덮인다. 귀성객을 태운 열차는 터질듯 만원이다. 오죽하면 민족의 대이동이요 대회귀(大回歸)라고 표현했을까. 고향을 찾아 성묘하는 풍습은 그지없이 흐뭇한 현상이다.

이 흐뭇한 행렬을 바라보면서 눈시울을 적시는 이웃들도 있다. 고향을 잃은 실향민, 떡방아를 찧지 못하는 가난한 이웃, 사람을 그리워하는 양로원의 어른들이다. 우리 농촌에는 이국멀리 시집온 다문화가족들이 있다. 그들 역시 고향부모를 생각하며 애잔한 마음을 가질 것이다. 나눠 갖고 나눠 먹는 마음씨가 이들의 시름을 덜어주는 추석이면 좋겠다.
요즘 사람들은 누구나 삶이 바쁘고 고달프다. 버젓한 직장이라도 갖고 있으면 좋지만 취업 못한 젊은이들은 고향가기가 두렵다. 이런저런 이유로 혼기를 넘긴 이들도 마찬가지다. 부모에게 사람노릇을 해볼 수 있는 흐뭇한 날이지만 마음이 편편치 않다. 명절 스트레스다. 차례상을 준비하는 가족들도 그렇다. 올해는 대체휴일제가 생겨 연 닷새 동안 쉰다. 그래서 고향을 찾는 마음이 더 부산하고 더 다양하다.

농사일에 검게 그을린 부모를 뵙고, 형제자매와 웃음을 나누는 명절이다. 선물꾸러미를 들고 찾는 고향의 맛은 행복 그 자체다. 그 행복은 저울에 달 수 없고, 자로 잴 수 없는 행복이다. 점차 명절의 의미가 차례를 지내는 전통보다 가족단위로 친목을 도모하거나 얼굴을 보는 날로 변하는 추세다. 제례를 숭상하는 유교문화가 쇠퇴한 것도 원인이다. 추석풍속도가 빠르게 변하고 있다. 우리 고유 미풍양속의 명절 전통성이 사라질까 우려된다. 시대에 따라 달라지는 풍속을 어찌 하겠는가.
하지만 중추가절의 의미는 살리면서 넉넉한 마음을 가지려는 지혜가 필요하다. 그래도 추석이 좋은 이유는 잠시나마 세상 시름을 내려놓고 온 가족이 한데 모여 회포를 풀 수 있어서다. 여기저기 흩어져 산 가족이 부모에 계신 고향에서 만나 서로 격려하고 염려도 해주며 정을 나눈다.
추석에 고향을 찾는 이들은 부모가 사는 농촌의 심각한 문제를 알아야 한다. 고온 현상, 가뭄, 우박 날벼락 등 기상이변으로 농사짓기도 예전과 다르다. 힘든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가족이란 어떤 의미를 지닐까.

가족을 바라보는 시선은 매우 다양하다. 가족 간 갈등도 있고, 가족의 따뜻한 격려에 힘을 얻어 성공한 이들도 있다. 누구는 가족을 전쟁터라고 말하기도 한다. 워낙 모이기가 힘든 세상이니 그나마 가족 간의 유대와 정서적 지지(支持)가 가족의 기능으로 강조되는 것인지 모르겠다.
요즘 TV에 나오는 가족은 한부모 가족, 재혼 가족, 계약 결혼부부, 동거하는 젊은이 등 매우 독특한 모습을 보인다. ‘가족이 붕괴하고 있다.’고 말하는 이들도 있다. 가족의 모습이 어떠하든 가족 간의 유대와 신뢰는 더 강화되고 정서적인 안정은 더 깊어져야 한다. 추석이 가족의 가치를 소중히 여기는 명절이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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