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천년 전통문화 숨결 되살린다

통영 나전칠기 전승의 맥 이어…옻칠그릇 현대접목 시도도

‘나전(螺鈿, 광채 나는 자개 조각을 여러 모양으로 박아 붙여 장식한 공예품)의 아름다움은 결코 그 번쩍거리는 소라껍질에서 얻어 낸 광채 때문이 아니다. 상감(象嵌, 도자기 등의 표면에 각종 무늬를 음각으로 파서 그 속에 금·은 등을 채워넣는 기술)한다는 것, 어디엔가로 깊이 파고 들어가는 보석의 속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아름다운 것이다.’
원로 문화논객 이어령이 <우리문화 박물지>에서 나전칠기(螺鈿漆器)의 깊이있는 아름다움에 대해 언급한 말이다.
그 말처럼 나전칠기는 그 기법부터가 범속(凡俗)함을 훌쩍 뛰어넘는다. 전복, 소라, 진주조개를 다듬어 끊음질, 주름질로 기물에 수려한 문양을 새겨 박으며 옻칠하고 광내는 마감질까지 모두가 흡사 득도 수행과정에 다름 아닌 미세 공정이 그렇고, 그런 연유로 규방공예의 정수로 자리잡은 것 또한 남다른 품격에서 비롯된 바다.
그런 지난한 역정에도 불구하고 지난 반세기 동안 오직 한 길-나전칠기의 옛 숨결을 온전하게 되살려 오고 있는 이가 이형만 명장(69)이다.
나전칠기는 얇게 손질해서 간 조개껍질을 다양한 문양으로 오려 기물에 새겨넣어 장식한 공예품을 말하고, 그 나전칠기를 만드는 장인(匠人)을 ‘나전장(螺鈿匠)’이라 이른다. 이형만 명장은 중요무형문화재 제10호 나전장이다.

중학진학 포기후 장인의 길로

▲ 포도동자문삼함

이명장은 나전칠기의 본고장인 경남 통영의 산양면 출신이다. 본래 통영은 조선조 수군 통제영 시절에 12공방을 둔 것이 바탕이 돼 전승공예와 전통연희의 요람이 되었었다. 통영 갓, 통영 나전칠기, 소목공예, 통영오광대 등등 무려 8개 분야가 국가지정문화재로 지정됐을 정도로 번성했던 우리 전통문화의 메카였는데, 세상이 변하면서 시름시름 장인들이 이곳을 등지고 지금은 몇개 분야만 겨우 명맥을 유지해 가고 있다.
이러한 전통문화의 고장에서 이 명장이 나전칠기 장인의 길에 들어 서게 된 건 필연 같은 우연에서 비롯됐다.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중학교 입학시험을 앞두고 있던 시점에서 오른팔에 골절상을 입은 우연찮은 사고로 결국 중학교 진학을 포기하기에 이른다. 그러나 배움에는 때가 있는 법, 무엇이건 배우자 하는 일념으로 발을 디민 곳이 통영에 설립된 경상남도 기술원양성소였다. 이때가 이명장 나이 열다섯살이었는데, 이곳에서 그는 평생의 스승이자 그를 나전칠기 장인의 길로 이끈 고(故) 김봉룡 선생을 만나게 된다.

평생의 스승 김봉룡 명장과의 만남

▲ 우리옻칠기(목기)

결코 쉽지만은 않은 길이었지만 당시 기술원양성소 소장이자 나전칠기 명장으로 나라 안에서 최고로 꼽던 김봉룡 선생에게 예술적 재능을 인정받고, 1966년에는 김봉룡 선생이 국가로부터 중요무형문화재 제10호 나전칠기장 기능보유자로 지정됨과 동시에 그 문하의 전수자에 지정돼 본격적인 나전칠기 장인의 길에 접어들게 된다.
그는 김봉룡 명장 문하에서 작품이론과 도안, 재료선택, 나전 제작방법, 옻칠 기교 등등 기초를 더욱 단단하게 다져가며 예술성의 깊이를 더해 갔다. 그의 작품세계는 일취월장으로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시련속에 되찾은 ‘나전’의 길
이명장은 이 무렵 옻칠기법에 있어서는 당대 최고의 기능을 갖춘 임성춘, 장일순 선생에게 사사를 받으면서 나전칠기의 공예기법을 한단계 끌어올린다.
그러나 현실적 생활이 문제였다. 스승 문하에서 고진감래로 몇달, 아니 1년에 한두 작품을 고작 완성시키는 전수조교 일로는 ‘밥’이 되질 않았다.
1975년 서른의 나이에 결혼과 함께 스승의 슬하를 떠나 부산에 자신만의 공방을 차렸다. 그러나 생각처럼 쉽지 않았다. 거래처의 연이은 부도로 결국 3년 만에 파산이라는 쓰라린 시련을 겪어야만 했다. 실의 끝에 그가 다시 찾은 곳은 마음의 고향, 스승 김봉룡 명장이 있는 강원도 원주였다. 이곳에서 그는 새로운 나전칠기의 세계로 접어든다.
그로부터 그의 작품세계는 더욱 원숙해져 스승 김봉룡 명장의 타계와 함께 그 뒤를 승계해 1996년 중요무형문화재 제10호 나전장에 지정되기에 이른다.
그는 요즘 후진 양성을 위해 대학과 한국문화재보호재단에서 운영하는 한국전통공예건축학교에서 나전칠기 공예기법을 가르치는 것 외에 실용적인 우리 옻 칠기를 만드는 정선공방을 내고 전통의 현대화 접목에도 힘쓰고 있다. 그는 말한다.- “전통의 뿌리가 내릴 곳도 이 땅이고, 전통이 살아 숨쉬어야 할 곳도 이 땅이다. 전통의 현대 접목은 그래서 소중하고 그것이 나에게 남겨진 마지막으로 풀어가야 할 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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