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광희 기자의 ‘세상만사’

세상을 먼저 살다 간 사람들의 말[言]은 그 삶의 깊이에 따라 깊은 울림을 준다. 사람에 따라서는 얼토당토 않은 궤변을 늘어놓은 것 같아도 때론 역지사지(易地思之)로 상대의 처지에 서 볼 수도 있는 일이고, ‘나는 그러지 말아야지’하는 타산지석(他山之石)으로 삼을 수도 있으니 그 또한 커다란 가르침이요 깨우침이다. 그래서 세상사람들은 그런 말들을 ‘명언(名言)’이란 말로 울타리를 치고 자신의 마음의 밭을 간다.
특히 문인(文人)이 아닌 무인(武人)의 경우 칼과 총, 곧 무력이라는 힘이 실려 있어 그 울림의 무게감을 더해 준다.
저 고대 로마 공화정시대 말기의 정치가이자 군인이었던 시저(율리우스 카이사르, Julius Caesar; B.C100~B.C44)는 최대 정적 폼페이우스와의 결전을 앞두고 ‘주사위는 던져졌다’(B.C49)고 했으며, 그를 격파, 알렉산드리아 전쟁에서 승리한 후 2년 뒤인 B.C47년, 소아시아 정벌 후에는 ‘왔노라, 보았노라, 이겼노라(veni, vidi, vici)’ 단 세마디로 로마원로원에 승전보고를 했다.

그런가 하면 프랑스의 ‘불사신’ 나폴레옹(Napoleon, 1769~1821)은 프랑스령의 한 작은 코르시카 섬 출신이라는 볼품 없는 출신성분에도 불구하고 5척단구의 작은 키로 일세를 호령했던 풍운아 였다. ‘기회 없는 능력은 쓸모가 없다’ ‘승리는 가장 끈기있는 자에게 돌아가는 것이다.’ ‘내 사전에 불가능이란 없다’ ‘우리가 어느 날엔가 마주칠 불행은 과거에 우리가 소홀히 보낸 어느 시간의 보복이다’는 말들처럼 1%의 가능성에도 자신을 던진 열혈남아였다.

우리의 이순신장군과 비견되는 영국의 해군제독 넬슨(Nelson, 1758~ 1805)은 1794년 코르시카섬 점령시 오른쪽 눈을 잃고, 1797년 세인트빈센트 해전에서 승리와 함께 오른쪽 팔을 잃는 역경에도 불구하고 오늘날의 무적 영국해군의 초석을 쌓았다. 그는 역사적인 트라팔가 해전에서 총탄을 맞아 숨지기 전 빅토리호 함상에서 꺼져가는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신이시여, 감사합니다. 저는 제 의무를 다했습니다.… 그리고 모든 것은 시간이다. 5분이 승리와 패배를 가른다. 나는 항상 15분 앞서 있었고, 그것이 나의 비결이다.’
요즘 나라 안 극장가는 온통 이순신의 대첩을 그린 영화<명량> 열풍이다. 그리고 영화 속 명대사가 네티즌들의 입에 수도 없이 오르내린다. 모두들 ‘내가 이 영화를 보고 감동한 이유’라는데… 과연 얼마만큼의 울림이 있는지 헤아려 볼 일이다. 그래서 이순신 장군이 위대한 것이기도 하니까 곱씹어 볼 일이다.
‘살고자 하면 죽을 것이요, 죽고자 하면 살 것이다.[必死卽生, 必生卽死]’ ‘두려움을 용기로 바꿀 수 있다면’ ‘충(忠)은 백성을 향해야 한다.’ ‘집안이 나쁘다고 탓하지 마라’ ‘옳지 못한 방법으로 가족을 사랑한다 말하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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