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광희 기자의 ‘세상만사’

여름과 가을 두 철이 시나브로 갈리는 8월 이맘때 쯤이면 어머니는 안마당 한켠 울밑 언저리에 봄~여름 내내 다독다독 가꿔 온 꽃밭에서 새빨간 봉숭아 꽃잎과 잎줄기를 솎아 따냈다. 그리고는 휘영청한 달빛이 담장 위 하이얀 박꽃에 쏟아져 내리는 보름 달밤에 봉숭아 꽃잎과 잎줄기를 작은 손절구에 넣은 다음 백반가루와 소금을 간 하듯 넣고 콩콩 짓찧어댔다. 그런 다음 그것들을 어린 누이의 손톱에 고약 붙이듯 얹고 호박잎으로 싸맨 다음 무명실로 친친 동여맸다. 어린 누이는 봉숭아꽃물들이는 설레임과 조심스러움으로 밤새 뒤척였다. 그렇게 봉숭아꽃은 갈 겨우내 붉은 연정처럼 어린 누이의 손끝에 깃들어 있었다.
시조시인 가람 이병기(李秉岐) 선생은 봉숭아 물들이는 밤의 모습을 ‘고운 그 물빛이 행여나 덜어들까/ 밤에도 조심스러이 잠을 사려 드느니라’하고 그렸다.
봉숭아 물들이기는 아주 먼 옛날에도 있었던 모양인데, 조선조 때의 박명한 여류 시조시인이었던 허난설헌(許蘭雪軒)은 <염지봉선화가(染脂鳳仙花歌)>란 시조를 지어 봉숭아 물들이기의 애틋함을 은유적으로 그렸다.
‘금분(金盆, 좋은 화분)의 저녁이슬 각시방에 엉기면/ 아가씨 열손가락 예쁘고 매끈해/ 대절구로 짓찧어 배춧잎으로 말아/ 놀이개 울리며 등잔 앞에서 동여맸네./ 새벽에 일어나서 발을 걷어올리자니/ 반가와라 붉은 별이 거울에 비치네./ 풀잎을 뜯을 때는 붉은 나비 날아온 듯/ 가야금 탈 때는 복사잎 떨어지듯 놀라워라.’
원래 봉숭아는 인도와 동남아시아가 원산지로 한자어로는 봉선화(鳳仙花)라 부른다. 7~10월에 적·백·분홍색 꽃이 잎겨드랑이에 달리는데, 꽃 피는 모습이 수컷 봉황새 같다 하여 금봉화(金鳳花), 여인네들 손톱에 꽃물 들이는 것에서 지갑화(脂甲花), 투골초(透骨草), 호녀아화(好女兒花)란 이름을 얻었다. 뿐만 아니라 연한 녹색 빛깔로 말갛게 부푼 씨방은 흡사 새의 머리를 닮았는데, 살며시 손끝이 닿기만 해도 ‘탁’ 터지는 급한 성질을 가졌대서 ‘급성자(急性子)’란 이름도 있다. 그런 연유로 꽃말은 ‘신경질’이고, 꽃물들이는 것에서 연유된 ‘부활’로도 얘기된다.
봉숭아는 한방에서 약재로도 쓰이는데, 곤장 매를 맞아 상처가 깊은 장창(杖瘡)에는 잎·뿌리를 짓찧어 붙이면 어혈이 속히 풀리고, 고기 중독인 육독(肉毒)에는 잎·뿌리·줄기의 즙을 먹으면 효험이 있다고 전해진다.
그러나 세월이 변해 ‘아빠하고 나하고 만든 꽃밭’의 봉숭아는 찾아볼길 없고, 박은옥·정태춘의 <봉숭아> 노랫말처럼 봉숭아 물들여주던 그님도 간데 없다.
‘손톱 끝에 봉숭아 빨개도/ 몇밤만 지나면 질터인데/ 손가락마다 무명실 매어주던/ 곱디 고운 내님은 어딜갔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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