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고층 빌딩숲과 교통체증, 매연과 소음. 일반인들이 흔히 생각하는 서울의 이미지다. 하지만 이런 서울에서도 전원생활을 누리며 고소득을 올리고 있는 농업인들이 많다는 사실을 아는지.
서울에는 2012년 현재 807ha의 경지에 9천927명의 농업인들이 있다.
이들은 도시텃밭 등을 가꾸는 도시농부와 함께 지역에 따라 크게 동부(채소), 서부(벼), 남부(화훼), 북부(과수)로 나눠진 전업농들이다.
서울은 가락동농산물시장과 양재동 꽃시장, 서남권 농산물시장 등 대규모 도매시장이 있고 유동인구가 많아 판로가 용이해 다른 지역에 비해 고소득을 올리고 있는 농업인들이 대다수다.
이들 ‘서울 농부’들을 만나 이야기를 들어봤다.

■ 동 부

“서울 농업의 미래요? 맑음입니다”
서울특별시 강동구 강일동에서 시설채소를 재배하고 있는 신미선(58세) 씨.
신씨는 남편 김정섭(60세)와 함께 86년부터 28년간 이곳에서 친환경으로 오이, 가지, 호박 등을 비롯해 각종 쌈채소들을 재배하고 있다.
신씨 부부가 농사를 짓고 있는 강동구는 강남구, 서초구, 송파구와 더불어 강남4구에 속해 서울 집값을 주도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의 도심지.
“농업은 노력한 만큼 보상을 해주는 정직한 직업이죠. 각박한 서울에서 스트레스없이 살아갈 수 있다는 것도 도시농부의 큰 장점 아닐까요?”
또 가락동농산물시장을 비롯해 학교급식까지 대형 판로가 있어 품질 유지에만 전념할 수 있다는 것도 서울에서 농사짓는 것의 묘미다.
특히 점차 어려워지고 있는 우리나라 농업 현실과 비교해 서울의 농업은 다르다는 것이 이들 신씨의 생각.
“지자체를 중심으로 한 주말농장과 도시텃밭 확대로 쌈채를 비롯한 채소류의 소비가 눈에 띠게 줄고 있습니다. 또 저장시설이 발전하다보니 작황상황에 관계없이 가격이 낮아지는 점도 농업인들에게는 고민이죠. 하지만 친환경으로 고품질을 유지할 수만 있다면 유동인구가 많은 서울의 거대시장에서 앞으로 전망은 밝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습니다.”

서 부

“1천만 서울시민이 내 고객”
서울시 강서구 오곡동에서 친환경 쌀 농사를 짓고 있는 강한성(58세) 씨.
강 씨는 이곳 약 10만㎡(3만여평)의 논에서 30년째 농사를 짓고 있다.
비싼 서울 땅에서 농사를 지어 수익을 보장 받기 위해서는 품질과 함께 차별화가 필수라고 강 씨는 강조했다.
특히 강 씨는 서울이라는 큰 시장이 그 어느 지역과 비교할 수 없는 강점이라고 강조했다.
“추청으로 양질의 품질을 유지해 ‘경복궁쌀’ 브랜드로 대부분 농협으로 납품하고 있습니다. 또 흑미와 찹쌀, 서리태 등 특화작목으로 소득을 올리고 있습니다. 시장이 가깝다보니 판매가 용이한 것이 이곳의 큰 장점이죠.”
이와 함께 강 씨는 논과 인접한 밭을 주말농장으로 조성해 소득을 올리고 있다.
주말농장 이용객들은 강 씨가 친환경으로 재배한 쌀과 잡곡, 채소 등의 가장 큰 고객이기도 하다.
“농사라는 것이 머리쓰고 경쟁하고 하는 것보다도 자연속에서 사는 것이 가장 행복하죠. 내가 노력한 만큼 보상을 해준다는 매력이 있어 다른 일을 해보겠다는 생각을 단 한번도 해본 적이 없습니다.”

남 부

꽃과 함께 한 30년 “고맙다 꽃들아”
서울에는 양재동과 내곡동 등 유명 화훼단지가 조성돼 있어 서울의 다른 농업 분야에 비해 화훼분야는 많이 알려진 편이다.
이곳 내곡동에서 1천600여㎡(500여평)의 하우스를 경영하고 있는 김명숙(66세) 씨는 30여년간 꽃과 함께 살아왔다.
“예전에는 1천200여평에서 꽃을 재배했지만 지금은 주말농장에 내주고 하우스만 남겨놓은 상태죠. 예전같진 않지만 아직까지 이곳의 명성을 듣고 전국에서 고객들이 찾아옵니다.”
30여년 전, 갑작스런 사고를 당한 남편을 대신해 생계를 꾸리게 된 김 씨에게 선택의 폭은 그다지 넓지 못했다. 가족을 돌보며 동시에 고소득을 높일 수 있는 일이 없을까. 김 씨는 고민 끝에 화훼를 선택했다.
계절과 유행에 맞는 작목과 종자를 누구의 도움없이 자신이 모든 것을 결정해야하기 때문에 센스도 필요할 뿐만 아니라 다른 작목에 비해 이론보다 실전이 필요해 끊임없이 공부해야 하는 분야가 화훼다.
또 시기에 맞춰 출하량도 조절해야하기 때문에 다른 곳에 눈돌릴 틈 조차 없다.
자식들을 훌륭하게 키워내고 안정된 가정을 꾸리게 된 지금 김 씨는 꽃이 그저 고맙고 사랑스럽다.
“꽃은 거짓말을 안하잖아요. 욕심을 부리면 이 이아들이 바로 알아차려요. 진실로 대해야하죠. 이렇게 항상 꽃만 바라보고 살다보니 꽃에게서 배우는 것이 참 많습니다. 꽃과 함께 앞으로도 행복하게 살고 싶어요.”

북 부

“맛으로 승부하니 고객 끊이지 않아요”
아파트 단지로 둘러싸인 이곳에 1만6천여㎡ 규모의 ‘샘물배농원’이 있다.
남편과 함께 이곳을 운영중인 김숙자(52세) 씨는 이곳에서만 16년째, 총 26년동안 서울에서 배를 재배해왔다.
특히 샘물배농원은 100% 직판으로만 운영하다보니 대규모 판로가 없어 자리잡기까지는 다소 시간이 걸렸다.
“처음 5~6년간은 먹고 살 돈도 손에 쥐지 못할 정도로 힘들었죠. 품종 개량이나 과수원 정비도 힘들었지만 판로를 뚫는 과정이 가장 어려웠습니다.”
하지만 김 씨 부부는 포기하지 않았다.
가장 기본인 ‘맛’으로 승부를 걸겠다는 생각으로 옆눈질 한번 하지 않고 오직 ‘맛좋은 배’만을 바라보고 달려왔다.
“백화점과 대형마트에 진열돼있는 크고 예쁜 배들과 비교한다면 상품성이 떨어져 보일 수도 있지만 한번 우리집 배를 맛 보신 분들은 반드시 다시 찾으실 만큼 ‘맛’은 보증합니다.”
‘맛’으로 입소문을 탄 김 씨 부부의 배를 찾는 사람들은 늘어났고 지금은 서울 뿐만 아니라 경기, 충남을 비롯해 제주도에서까지 주문이 밀려온다.
오로지 입소문으로만 확보한 고객인 셈이다.
“서울의 큰 장점은 뭐니뭐니해도 큰 소비시장입니다. 다른 지역과 비교할 수 없는 유동인구를 통해 홍보효과도 즉각적으로 나타나기 때문에 정말 지금의 품질만 유지한다면 소비자는 매년 늘어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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