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다문화특별기획 - 해피투게더

▲ 지선씨는 남편 이승언 씨와 함께 바다낚시를 즐긴다. 바다에 미래를 건 지선씨에게 남편은 넓은 어깨만큼이나 든든하다.

 ■ 다문화여성탐방 - 김지선 씨 (제주도·베트남 출신)

“고향에선 바다에 들어가
본 적도 없지만…
당당한 제주 ‘아즈망 해녀’ 될래요”

삼다도(三多島)라는 제주에는 여전히 바람도 많고 돌도 많지만 여자로 대변되던 해녀는 명맥이 가물가물해진지 오래다.
베트남에서도 마을 앞 하천 밖에는 큰물이라고는 본 적도 없는 베트남 새댁이 제주해녀의 명맥을 잇겠다고 나섰다.
마침 유네스코 세계무형문화유산 등재를 추진하고 있는 제주에서는 김지선 (28세, 베트남 명: 판 티 홍 으넝)씨와 같은 다문화결혼이주여성들까지 해녀라는 직업에 관심을 가지는 것만 해도 호재가 아닐 수 없다.
지선 씨의 바다사랑, 가족사랑 그리고 살아가는 이야기.

▲ 해녀 수업중에 모델같은 멋진 포즈를 취한 지선씨. 8월에 정식 해녀 데뷔를 앞두고 있다.
처음 본 바다에 흠뻑
제주 한림읍에서 시부모님과 남편 이승언(39) 씨 그리고 1녀 2남의 아이들과 살고 있는 지선 씨는 제주도에 와서 처음으로 바다에 몸을 담가 봤다.
8년 전 결혼중개소의 소개를 통해 스무 살의 나이로 남편 이 씨를 만났다.
“인천공항에 내려서 다시 김포공항으로 가 제주에 왔어요. 시집에 와서 본 첫 느낌은 그냥 환상적 이었죠. 넓은 바다가 있는 아름다운 마을이었어요.”
지선 씨에게 제주 한림 바다는 그렇게 운명처럼 다가왔다. 제주에서도 이제는 옛 이야기가 되간다는 해녀를 꿈꾸게 될 줄이야...
베트남의 내륙지역에 살던 지선 씨는 기껏해야 마을 앞개울에서 어설픈 물장구를 쳐 본 정도가 수영의 전부다. 지선 씨는 7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는 남편의 무거운 어깨를 덜어주기 위해 해녀가 되기로 결심했다.
남편 이 씨는 “무슨 일이든지 결심하면 반드시 실천하고 최고가 되려고 노력한다.”고 아내를 평한다.

수줍은... 그러나 억척스런

▲ 고참 스승님(?)들과 물질을 끝내고 가는 지선씨의 뒷모습이 아름답다.
지선 씨는 말 수가 그리 많지 않다. 외모도 가녀리다.
하지만 그녀의 내면에는 용광로 같은 적극성이 있다. 가족이 움직일 때 남편을 조금이라도 쉬게 하려고 운전을 배웠다.
어머니가 하시는 요리는 빼어난 눈썰미로 기억했다가 다음에는 같은 맛을 낼 정도로 솜씨도 뛰어나다.
힘든 남편의 어깨 짐을 덜기위해 인근 그물 수선작업장에서 일도 한다.
지선 씨는 “동료들과 간식으로 라면을 먹을 때가 가장 좋아요. 육지와는 달리 제주에는 별다른 주부부업거리가 없어서 그물 수선작업을 하고 있어요.”라고 했다.
시어머니 김옥희(60) 씨와 시아버지 이덕순(64) 씨도 이렇게 적극적인 며느리가 너무나 대견스럽다.
“처음 공항에서 봤을 때 까무잡잡 한게 깡말라 걱정도 많았죠. 하지만 저렇게 여린 아이가 손주도 3명이나 낳아주고 집안 식구들을 위해 헌신적으로 일하려고 하니 미안하고 고맙고...”시어머니는 말을 잊지 못한다.

제주 해녀학교에 등록
지선 씨는 올해 3대 1의 경쟁을 뚫고 ‘한수풀 제주해녀학교’에 입학했다.
세계에서 단 하나밖에 없다는 제주해녀학교는 매년 70명의 교육생을 뽑는데 다문화특별전형으로 5명을 선발, 교육한다. 연간 16주의 교육을 마치고 일정기준의 테스트를 통과하면 해녀가 될 수 있다.
하지만 교육이수생 중 실제로 해녀가 되는 경우는 드물다, 그만큼 어렵고 고된 반면 일의 강도에 비해 수입은 크지 않기 때문이다.
지난 5월 10일 제7기 교육생 입학식에 참석한 지선 씨는 각오를 새롭게 다졌다고 한다.
“남편은 3년 전 만해도 종업원을 여럿 둔 식당 사장님이었는데 가게가 잘 안 돼 지금은 어린이집 통학버스를 운전하고 있어요. 토, 일요일에는 새벽 한시에 나가 아침 8시까지 쓰레기 수거 트럭을 운전하지요. 우리 가족을 위해 너무나 힘들게 일하는 남편이 고맙고 저도 열심히 도우려고 해요. 해녀일해서 돈도 많이 벌고 싶어요.” 남편의 힘든 일상을 이야기 하는 지선 씨의 눈에 물기가 고인다.

미래를 개척하는 자맥질
그는 “해녀 다큐멘터리를 보고 해녀 일을 배우기로 결심했어요. 시집온 지 8년이지만 아직도 한국말이 힘들어요.”라면서도 “하지만 물질만큼은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게 잘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열심히 배우고 있어요.“라며 당찬 자신감을 보여줬다.
그러나 그래도 안심이 안 되는지 ‘과외선생님’들까지 따로 모시고 교육을 받고 있다.
해녀생활 3~40년 이 된 김미경(55) 씨 등 베테랑 해녀들이다.
“수산물은 미끄러우니까 면장갑을 끼고, 자맥질하러 들어갈 때는 손을 쭉 뻗어야지, 그래 그렇게~”
김미경 씨는 “지선이는 정말 열심이어요. 우리가 젊었을 때 억척스럽게 일했던 때가 생각나요. 이렇게 든든한 후배가 생긴다니 정말 기쁜 일”이라며 지선 씨를 칭찬했다.
남편도 운전 중 짬을 내 수시로 지선 씨를 찾아 격려하고 있다.
오는 8월 교육과정이 끝나면 그는 제주도 최초의 외국인출신 해녀가 된다.
지선 씨는 “바다는 꼭 친구 같아요. 바다를 보면서 (이주) 초기에 어렵고 외로울 때 위안을 많이 받았죠. 이제는 바다가 저의 일터가 되고 우리 가족이 미래가 될 거예요. 가슴 설레는 일입니다.”라고 말했다.
이제 청정 제주의 푸른 바다에는 또 하나의 이야기 거리가 생기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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