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광희 기자의 ‘세상만사’

여름 무더위가 본격적으로 기승을 부리는 7월 20일을 전후해서 대부분의 각급 학교들이 방학에 들어간다. 대학은 이미 기말고사를 끝내고 7월초에 방학했다.
방학은 말뜻 그대로 배움에서 일시적으로 놓여나는 것이다. 아주 더운 여름과 혹심한 추위가 엄습해 오는 한겨울에 한 달 남짓 수업을 중지하고 집에서 쉬게 하는 제도다.
옛날 우리 전통사회에서도 방학이 있었다. 고려시대의 사학(私學)인 12도(十二徒)에서는 일종의 피서교육이자 계절학습인 하과(夏課)를 실시했다. 이때는 경관이 수려하고 청량한 절의 산방(山房)을 빌려 시를 짓는 시회(詩會)를 열고, 나이 순서대로 그 격에 맞는 조촐한 주찬(酒饌, 술과 안주)파티를 베풀어 주었다. 이것을 여름철 모임인 ‘하천도회(夏天都會)’라고 했다.
그런가 하면 조선조 초기 왕실 종친자제들의 교육기관으로 설치된 종학(宗學)에서는 매년 여름 음력 6월초~7월 말, 겨울철인 음력 11월~12월에 방학을 시행했다. 특히 매월 초하루·초파일·보름·23일에는 급가(給暇)라 하여 임금이 특명으로 휴가를 주어 휴식을 취하게 했다.
또한 조선시대 대학교육기관이었던 성균관에서는 학생들인 유생(儒生)들을 기숙사인 재(齋)에서 기거하며 공부하게 했는데, 학칙인 ‘학령(學令)’에 보면 매월 초파일과 23일에 모든 학생들이 집으로 돌아가 의복 세탁하는 것을 허락하되, 이 기간에 친척과 벗을 만나는 것은 허락하지만 활쏘기·투전·수렵·고기잡기 등의 유희를 하는 자에게는 벌을 내린다고 규정되어 있다.
조선조 스물일곱 군왕 중에서 독서광으로 소문났던 세종임금은 1426년에 일종의 독서휴가인 ‘사가독서(賜暇讀書)’제도를 시행했다. 최소 1~3년 동안 쉬면서 자유로이 책을 읽고 한달 혹은 석달에 한 번씩 읽은 책의 독후감을 제출하게 하고, 그 기간 동안에는 오로지 학문에만 전념케 했다. 말하자면 국비 유급휴가였던 셈이다. 사가독서에 뽑힌 당시 수재들이 글을 읽던 곳을 독서당(讀書堂) 혹은 호당(湖堂)이라 불렀다. 당시 문관들은 이 호당에 드는 것을 가문의 최고 영예로 여겼다.지금도 성동구 옥수동 옛 두모포(豆毛浦)자리에 독서당 표지석이 세워져 있다.
일제치하에서는 주로 학생들의 방학이 낙후된 농촌의 문맹퇴치, 강연회, 의료·근로봉사, 생활개선, 청소년 지도 등의 봉사활동이 주류였다.그뒤 산업사회의 발전과 함께 냉난방 시설보급, 기계화 등에 밀려 노동의 필요성이 없어지는 등의 변화를 겪으면서 방학의 모습도 많이 바뀌었다. 이제는 대부분의 대학생들을 농촌현장이 아닌 도시의 편의점 알바생으로나 만나게 되니 새삼 세월무상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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