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광희 기자의 ‘세상만사’

유두날은 음력 6월15일로 신라 때부터 있어 온 우리 고유의 여름명절이다. 올해는 양력 7월11일에 들었다. 이때는 농삿일이 그닥 바쁜 때가 아니어서 이 계절에 새로 나는 수박, 참외 등의 햇과일과 밀로 만든 국수와 전병을 조상과 농사신께 제물로 올리고 한해 풍년농사를 빌었다. 이 제사행위를 ‘유두천신(~薦新)’이라고 이른다. 유두제사를 지낸 다음에는 시원한 물가를 찾아가 음식을 나눠먹으며 시원한 물로 심신의 피로를 풀었다. 말하자면 물로 더위·질병 등 불길한 액을 물리치려 했던 ‘물맞이 명절’이었던 셈이다.
본래 유두란 말의 어원은 ‘동류수두목욕(東流水頭沐浴)’이다. 즉 동쪽으로 흐르는 물에 머리를 감고 목욕을 한다는 뜻이다. 굳이 동쪽으로 흐르는 물을 지칭한 것은 동쪽이 양기가 왕성한 방향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유두제사는 지역에 따라 올리는 음식이나 방법이 사뭇 달랐다. 전북지방에서는 찰떡을 논둑 밑이나 물꼬에 한덩이씩 놓고 물이 새지 않고 농사가 잘되기를 농신(農神)에게 빈다. 찰떡 대신 밀떡이나 송편을 올리기도 한다. 고사를 마치면 동네 아이들이 이 고사떡을 가져다 먹는데, 이 떡을 ‘유두알’이라고 한다.
경북지방에서는 유두제사를 용지[龍祭, 용왕제]라 불렀다. 이 용지 때에는 차노치(찹쌀노티)를 굽고 시루떡을 기름에 부치며, 호박전 등의 전음식을 차린다. 떡이나 전을 기름에 부치는 것은 기름냄새가 해충을 쫓기 때문이라고 믿는 속신 때문이다. 특히 안동지방에서는 유두날 아침에 국수와 수제비를 수박과 참외 밭고랑에 뿌린다. 수박줄기가 국수처럼 쭉쭉 뻗어나가고, 수제비 덩이처럼 참외가 주렁주렁 열리라는 의미다.
유두날의 명절음식으로는, 멥쌀가루를 쪄서 구슬같이 만든 다음 이것을 꿀물에 넣고 얼음에 채워서 먹는 수단(水團), 수단처럼 물에 넣지 않는 건단(乾團), 밀가루 반죽을 기름에 지진 다음 줄나물이나 콩과 깨에 꿀을 섞은 소를 쌈처럼 싸는 연병(連餠), 밀가루 반죽으로 송편처럼 콩이나 깨에 꿀을 섞은 소를 싸서 쪄낸 상화병(霜花餠), 그리고 유두국수와 고추장 장떡이 있다.
시절음식 외에도 물맞이 명절이니 의당 물놀이의 하나인 탁족놀이도 있었다. 탁족은 시원한 계곡물에 발을 담그고 더위를 쫓는 피서법인데, 전통사회에서는 선비들의 대표적인 피서법으로 알려져 있었다. 말하자면 선비들은 몸의 노출을 꺼려했기 때문에 두 발만 물에 담갔던 것이다. 차가운 샘물 바가지 세례로 머리털이 쭈뼛 서도록 시원한 등멱이나, 개헤엄질로 퉁탕이며 더위를 잊는 개울 목욕만은 못하지만 나름대로 자연친화적인 소박한 피서법이라 할 수 있다.…그러나 이제는 그런 ‘참 좋은 시절’이 저만치 멀어져 가면서 잊혀지기도 해 아쉬움만 쌓인다.

저작권자 © 농촌여성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