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광희 기자의 ‘세상만사’

60, 70년대 개발시대에는 입에 풀칠하기도 어려운 집이 한둘이 아니어서 자식들 교육은 언감생심 꿈에도 생각질 못했다. 그 자식들 또한 숙명이려니 생각하고 ‘국민학교’만 졸업하면 여기저기 사방으로 연줄(緣~)을 노아 취업전선으로 뛰어들었다. 시골의 숱한 ‘순이’들이 구로공단이며 방직공장, 가발공장에서 박봉에 시달리며 지난(至難)한 타향살이를 이어갔다. 그도저도 아닌 처지에 있는 아이들은 어려운 살림에 입 하나 덜 양으로 도시 부잣집 식모살이로 갔다.
사내아이들은 사내아이들대로 구로공단의 기계공장이며 노가다로 나가 배우지 못한 설움을 울대 너머로 울컥울컥 삼키며 뼈를 깎는 일상을 꾸려갔다. 그들 모두에게 내일에 대한 희망은 아득히 멀고도 먼 손에 잡히지 않는 신기루였다.
개중에는 ‘자격증이라도 따야 안정되게 밥이라도 먹는다’는 생각에 당시 우후죽순처럼 생겨나기 시작한 이·미용학원이며 요리학원, 복장학원엘 다녔다. 그렇게 주경야독식으로 힘들여 얻은 직업이란 게 이발사와 미용사, 그리고 주방보조와 재단사로 사회적으로 천시받기는 마찬가지였다. 너댓식구의 목숨줄이 달려 있는 시골의 알량한 자갈논 서마지기를 팔아올리고 땡빚을 얻어 미용실이며 양복점, 중국집을 차려도 여전히 천대받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러던 것이 세월은 무심한 듯 흐르고 흘러 세상이 상전벽해(桑田碧海)로 크게 변하면서 이들 개발시대 밑바닥 인생들에게도 쥐구멍에 볕들 듯 서광이 비치기 시작했다. 이용사·미용사가 헤어디자이너로, 재단사는 의상디자이너, 요리사는 셰프로 불리며 젊은이들이 선망하는 직업으로 탈바꿈 한 세상이 온 것이다. 사회적으로는 예술적 재능을 가진 전문가 그룹으로 각광을 받는 호사를 누리기에 이르렀다.
사회가 복잡해 지면 그만큼 직업군(職業群)도 다양해지게 마련이다. 최근 정부에서는 새로운 일자리 창출을 위해 신(新) 직업 41개를 정책적으로 육성 지원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셜록 홈스와 같은 사립탐정, 직장 옮길 때 지원 상담해 주는 전직 지원 전문가, 온라인상에서 개인과 기업 평가를 관리하는 사이버 평판 관리자, 주택을 비싼 값에 팔 수 있도록 인테리어 등을 컨설팅해 주는 매매주택연출가, 노년플래너, 맞춤형 여가 설계를 해 주는 문화여가사, 정밀농업기술자, 도시재생전문가, 자살예방행위상담전문가, 가정의 에너지 절감방법을 조언해 주는 가정에코컨설턴트, 이혼상담사, 외로움을 느끼는 사람을 정신적으로 지원하는 정신대화사, 디지털장의사, 동물간호사 등 선진국에는 있으되 우리나라에는 없는 직업들이다. 그 낯선 직업들이 새로 생겨나는 것을 보니, 세상은 참 요지경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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