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광희 기자의 ‘세상만사’

예전 시골 고향마을에서 있었던 얘기다. 홍가(洪哥) 성을 가진 이가 있었는데, 슬하에 아들 둘에 딸 하나 삼남매를 두고 그런대로 단란하게 집안을 꾸리고 있었다.
육척(六尺, 약180cm)은 실히 되는 장신에 마른 체격이었는데, 온화한 얼굴 표정이며 품성이 착한 무골호인(無骨好人)으로 동네사람들은 그를 일러 ‘법 없이도 살 사람’이라 했다. 워낙에 술을 좋아해 늘 얼굴이 불콰해 있었는데, 뒷짐을 지고 느리게 휘청휘청 걸어가는 그의 뒷모습을 보면, 흡사 커다란 바지랑대가 흐느적거리며 걸어가는 듯한 착각에 빠지게 했다.
그런 그가 여느 집과 다른 점은 부인이 둘이라는 것이었다. 예전 전통사회에서는 흔히 있을 수 있는 일이지만, 대(代)를 이을 씨앗을 받기 위해 남편과 사별한 미망인(未亡人)을 측실(側室), 즉 작은 부인으로 들인 것이었다. 본부인에게서는 자식이 없었음은 물론이다.
작은 부인에게서는 예의 삼남매가 태어났다. 그것도 칸 반이나 됨직한 작은 대청마루를 사이에 두고 본부인은 안방에서, 작은 부인은 건넌방에서 생활하면서 씨앗을 본 터였으니 남편도 남편이려니와 안방의 본부인 심경이 오죽했으랴 싶다.
하기야 예전의 관습대로라면 자식을 낳지 못하는 것을 부인을 내칠 수 있는 칠거지악(七去之惡)의 첫머리에 두던 시절이었으니, 설혹 남편이 백명의 첩을 두어도 말 한마디 못하고 모진 숙명의 끈을 잡고 가슴을 쥐어뜯으며 인고(忍苦)의 세월을 보내지 않았나 싶다.
그런데 정말 이해가 되질 않는 점은, 옆방의 작은 부인과 감정의 골을 세워가며 앙악불락(怏怏不樂) 티격태격 할 법도 한데 두 부인 사이가 너무 좋았다. 본부인은 작은 부인 소생의 아이들을 등짝에서 내려놓는 적 없이 지극정성으로 보듬어 아이들은 모두 자신들을 기른 큰어머니를 친엄마로 알고, 건넌방 작은 부인은 젖만 주는 엄마라 하여 ‘찌찌엄마’라고 불렀다. 훗날 그 아이들이 잘 커서 사관학교도 가고 의과대학을 나온 뒤에는 자신들의 생모(生母)가 ‘찌찌엄마’였다는 것을 알고는 하나 둘씩 서울로 올라가서는 제 생모를 모셔올려 함께 산다고 들었다. 피가 켕기는 천륜은 어찌할 수 없었던 모양이다.
이 경우와는 사뭇 다르지만, 최근 미국과 영국정부에서는 유전질환을 차단하기 위해 여성 두명과 남성의 DNA를 섞는 인공수정법에 대한 공식적인 논의에 들어갔대서 얘기가 분분하다. 말하자면 정자 하나에 난자 둘을 결합하는 방식이다. 실제로 미국에서는 90년대에 이러한 방식으로 세부모[삼친부모]를 가진 아기들이 30명 태어났다는 것이니, 생명윤리는 첨단 의술의 바닥 저만치에 내팽개쳐진 꼴이다. 정말 인간이 무서운 세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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