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촌여성신문·농촌진흥청 공동기획 - 보리의 무한변신, 보릿고개 넘어 웰빙으로…

① 우리민족과 함께 한 보리

한반도에서 삼국시대 이전부터 재배
엄동설한 이겨내는 대표적 겨울작물
술·장류·떡·식혜 등 전통식품의 주재료

쌀·밀·콩·옥수수와 함께 5대 곡류의 하나인 보리는 벼나 밀에 비해 1천여 년 이상 빠른 기원전 17,000~18,000년경부터 인류의 주요 식량이었다. 인류 문명 발상지에서 어김없이 보리 유적이 발견되는 것을 보면 보리는 기원전 전 세계로 전파돼 식량으로 이용됐음을 추정할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경기도 여주군 점동면에서 기원전 5~6세기 것으로 추정되는 겉보리가 발견된 바 있다.
보리는 기원전 800년 경 그리스인의 주식인 알피타(Alphita)의 주재료였고, 이집트 등에서는 밀보다 보리가 먼저 이용되기 시작했다. 핀란드의 리에스카(Rieska)라는 보리빵은 모든 빵의 시초였고, 17세기까지 유럽에서 보리빵이 서민음식으로 널리 이용됐다.

전 세계 곡물 생산량 5위
세계의 연간 보리 생산량은 1억2천만 톤(2010) 규모로 전체 곡류 생산량의 5%를 차지하는 네 번째로 생산량이 많은 작물로, 전 세계 생산량의 70%는 사료용, 20%는 맥주용으로 이용되고 있다. 주요 곡물 중 생산량은 4위인데 반해, 수량성은 옥수수의 50%, 쌀의 59%, 밀의 86%에 불과해 주요 곡물 중 6위다.
주요생산국은 독일, 프랑스, 우크라이나, 러시아, 스페인 등이며, 다른 곡류와 달리 전 세계에 고르게 재배되고 있다.

기원전 5세기경 중국서 전해져
기원전 5세기 경 중국으로부터 한반도에 전해진 보리는 삼국시대 이전부터 우리 민족의 중요한 작물로 재배되기 시작했다.
보리에 관한 최초의 기록은 삼국유사 동명왕편에 나오는데 ‘고구려 시조인 주몽이 부여에서 탈출해 남하할 때 슬픔에 겨워 보리종자를 잊고 왔더니 유화부인이 비둘기를 통해 보내줬다’는 내용이 서술돼 있다. 조선왕조실록에는 ‘선조 35년, 서풍이 불고 우박이 내려 봄보리가 모두 손상됐다.’ ‘태종 14년 강원도에 비와 눈이 내려 보리와 곡식을 상하게 했다’고 각각 기록돼 있다.
초여름에 보리가 여물지 않은 상태에서 가을걷이한 식량이 다 떨어져 굶주릴 수밖에 없었던 5~6월의 춘궁기를 ‘보릿고개’라고 표현했던 것에서 보듯이 보리는 조선시대 이전부터 부족하던 쌀을 대신해 춘궁기에 서민의 주린 배를 채워주던 고마운 곡식이었다.
식감이 다소 거칠고 색이 거무스름한 보리밥은 지금도 서민층과 넉넉지 못한 살림을 상징하는 사회적 의미로도 쓰인다.

겨울들녘 푸르게 물들이는 보리
보리는 벼과(科) 보리속(屬)에 속하는 곡류로 V자형으로 달린 모습이 특징이다. 보리 맥(麥) 자는 봄에 보리밟기를 하고 있는 모습을 형상화한 글자다.
작물학적으로 보리는 이삭 축에 V자 모양으로 이삭이 세 개씩 붙어 여섯 줄로 배열돼 있는 여섯줄보리와 두 줄로 배열돼 있는 두줄보리로 구분된다. 보리는 겉보리와 쌀보리로도 구분되는데, 겉보리는 껍질과 종자가 잘 떨어지지 않고, 쌀보리는 종자가 껍질로부터 쉽게 떨어진다.
보리는 연평균 기온이 5~20℃ 정도이고, 연 강수량이 1,000㎜ 이하인 북위 30~60°, 남위 30~60° 지역이 주산지다. 우리나라에서는 늦가을인 10~11월경 씨를 뿌리고, 5월말에서 6월초인 초여름에 수확하는 대표적인 겨울작물이다.
과거 박정희 대통령이 외국자본을 추가로 유치하기 위해 한겨울에 경부고속도로 건설현장을 방문했을 때, 현대 정주영 회장이 보리를 옮겨 심어 푸른 잔디처럼 보이게 해 외국인들의 찬사를 받았다는 일화가 있듯이 보리는 무채색인 겨울 들판을 푸르게 물들인다.
한편, 보리는 환경적응성이 매우 좋아 다양한 환경에서 재배되며, 기후에 맞게 변종이 나타나거나 생육기간이 변화하며 성장하기도 한다. 실제 히말라야 경사지에서는 수확량은 적지만 생육기간이 짧게 적응된 보리가 재배되고 있으며, 이 지역 보리는 건조한 날씨에도 강해서 사막 근처에서도 적응한다.

우리음식의 중요 식재료로 활용
보리는 가을걷이한 쌀이 떨어지는 시기의 주곡으로 먹어왔기 때문에 우리 음식의 중요한 식재료로서 많은 전통음식으로 탄생했다. 본초강목에는 보리 중 점성이 있는 것은 술을 빚는데 이용한다고 했고, 19세기 규합총서에도 보리를 장(醬)이나 식혜, 엿에 사용한다고 기록돼 있다.
보리가 흔한 지역에서는 봄철 고추장·된장·집장 등을 담글 때 사용했고, 여름에 빚는 술의 주요재료이기도 했다. 전라도 순창과 영광 등에서는 지금도 보리로 장을 담기도 하며, 대전의 강달순 여사는 보리겨로 담근 보리겨 고추장의 맥을 잇고 있다. 보성 강하주, 진도 홍주 등의 전통주는 보리누룩과 보리를 이용해 빚은 술이다.
장류나 술 외에도 보리는 떡과 미숫가루, 식혜, 보리고추장을 이용한 특산품을 만드는데 이용되고 있다.
색이 개똥처럼 새까맣다고 해서, 또는 겨떡의 발음이 변해서 이름 붙여졌다는 보리겨로 만든 보리개떡, 홍만선의 산림경제에도 수록된 건강식으로 과거를 보는 선비·상인·사냥꾼들의 비상식량이었던 미숫가루 등은 지금도 간간히 즐겨먹는 건강음식이다.
엿기름이라고도 부르는 보리의 싹인 맥아(麥芽)는 곡물을 삭혀 단맛을 내 식혜나 조청을 만드는데 이용되고, 전남 영광에서는 잘 말린 굴비를 고추장에 박아 만든 고추장굴비나, 굴비를 통보리로 덮어 발효시킨 보리굴비 등이 특산물로 전래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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