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정인 한국농수산유통공사(aT) 유통이사

▲ 윤정인 한국농수산유통공사(aT) 유통이사

"풍년이 왔음에도
농민은 울어야 하는
이른바 ‘풍년의 역설’ 현상이
반복될 경우 우리 농업기반의
붕괴로 이어질 것이 자명하다."

아직까지는 아침 저녁으로 쌀쌀한 기운이 있지만 한낮 햇살에 봄기운을 느끼며 벚꽃이 피는 따뜻한 봄이 기다려지는 3월이다.
지난 겨울은 한파주의보보다 미세먼지주의보가 더 자주 발령되면서 칼날같은 바람보다 미세먼지를 막기 위한 마스크 착용이 더 많았다. 기상 호조는 작년 여름부터 시작되었는데 태풍이나 가뭄, 홍수 피해가 거의 없어 고랭지채소부터 가을·겨울채소, 과일류까지 유례없는 풍년이 현재까지 지속되고 있다.
소비자들은 옷차림만큼 가벼운 장바구니 물가로 설레는 봄을 맞이하고 있지만 생산자들은 여전히 무거운 마음으로 추위 속에 웅크리고 있다.

불황에 떠밀리는 농산물 소비
작년 여름 고추 생산량 증가에 이어 김장철 배추·무 풍작에 따른 출하량 증가는 급격한 시세하락으로 이어지면서 수급조절매뉴얼상 하락경계 단계에 진입함에 따라 정부는 시장격리 및 수매·비축 등 수급안정대책을 시행 중이다. 그러나 정부의 시장개입을 통한 공급량 조절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가격하락이 지속되고 있다.
엎친데 덥친 격으로 일본 방사능 오염과 남해지역 기름 유출사고에 따른 국내 수산물 수요 감소, 경기침체에 따른 외식업계의 불황 등과 맞물려 채소류의 동반 소비저하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가격하락에도 불구하고 소비는 오히려 감소 추세에 있는 것이다.
국내산 농산물의 높은 품질과 안전성은 소비자들에게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그렇지만 식품가공업체나 외식업체에서는 수입 농산물을 선호한다. 이윤 극대화가 최우선 목표인 기업의 입장에서 저렴한 식품원료를 안정적으로 확보하기 위해 수입 농산물을 사용하는 것을 탓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하지만 국내 농산물 가격하락이 지속되고 있는 지금 대형식품업체와 외식업체들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국내산 농산물을 주원료로 가공된 식료품이나 주요 음식을 메뉴로 홍보하여 소비자들의 사회적 공감대와 참여의식을 높이고, 식품 안전성을 우선시하는 소비자들에게 선택의 폭을 넓혀야 한다. 일반 소비자들은 뉴스나 신문매체에서 농산물 가격하락에 대한 기사를 접하고 소비촉진에 적극 동참하고 있지만 대량소비업체에서는 여전히 수입산 농산물의 사용 비중을 고수하고 있는 실정이다.

농민의 아픔 공유할 때
풍년이 왔음에도 농민은 울어야 하는 이른바 ‘풍년의 역설’ 현상이 반복될 경우 이는 우리 농업기반의 붕괴로 이어질 것이 자명하다.
상상조차 하기 싫은 이야기지만 우리 식탁에 오르는 모든 농산물이 저렴한 수입농산물로 대체될 수도 있는 것이다. 농산물 가격변동을 내부적으로 통제하고 조절할 수 없는 외부적 요인의 의존성 심화로 확대되는 것이다. 김치와 고추장 가격이 중국의 고추작황에 따라 좌우되는 것은 과연 현실성 없는 상상에 불과한 것일까.
라면은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식품 중 하나다. 라면 스프를 만들기 위해서는 고추, 마늘, 양파 등 각종 수입 양념채소가 건조 상태로 들어간다. 지금까지 수입산 농산물을 원료로 한 저렴하고 얼큰한 라면이 국민식품이었다면, 국내산 고춧가루와 마늘·양파를 원료로 가칭 ‘한국인이라면’이라는 특별기획 상품을 출시해 보는 것은 어떨까.
아직도 한겨울 추위에 웅크리고 있는 생산 농민들을 위해 국민 모두 연대의식과 책임감을 공유할 때이다.
겨울의 인내와 봄의 햇살이 빚어낸 생명력으로 충만한 우리 농산물로 가족의 건강을 지키며 벚꽃이 화사한 봄을 맞이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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