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광희 기자의 ‘세상만사’

추수감사절 하면 많은 이들이 어린시절 고향동네 언덕빼기에 있었던 작은 교회당을 머릿속에 떠올릴 것이다. 교회에 다니는 것과는 상관없이 그 낯선 단어가 인쇄된 플래카드가 교회 머리빡에 내걸린 이맘때쯤이면 집에서는 좀체 구경하기 쉽지 않은 사탕이며 빵, 쿠키과자를 아무 생각없이 얻어먹었던 곳이었으니까. 인자하신 목사님은 “이 가을 우리에게 이토록 풍성하게 일용할 양식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의 기도를 드립니다”했다. 맛나는 사탕이며 과자에 혼을 빼앗겨 버린 코흘리개들에게 이 엄숙한 목사님의 기도가 귀에 박힐 리 만무였음은 물론이다.
본래 추수감사절은 미국의 기독교도들에 의해 만들어진 축일(祝日)이다. 서부개척 이후 정착해 황량한 땅을 일구어 양식을 얻고 가정에 평화가 내리니 그 아니 기뻤겠는가. 그들은 한 해 땀흘려 가꾼 곡식을 거둬들인 뒤 가을 한 날을 정해 하나님께 감사의 예배를 올리게 되었으니, 이름해서 ‘쌩스 기빙 데이(Thanks-giving Day)’다. 미국에서는 11월 넷째 목요일에 ‘터키(칠면조)요리’를 중심으로 성찬을 차려놓고 감사예배를 올리고, 우리나라에서는 기독교도들이 시월 중 일요일을 택해 감사의 축일을 지낸다.
미국보다 훨씬 오랜 역사를 지닌 우리 민족도 저들의 ‘추수감사절’과 같은 세속(世俗)이 있었다. 우리 민족은 일년 사시사철 가운데서 농삿일이 다 마무리 되어 가을걷이가 끝나는 음력 시월상달(十月上~)을 햇곡식을 신에게 드리기에 가장 좋은 달로 쳤다.
‘술 빚고 떡 하여라 강신날(降神~) 가까왔다/꿀 꺾어 단자하고 메밀 찧어 국수하소/소 잡고 돼지 잡으니 음식이 널렸구나.’
정다산의 둘째아들 정학유가 지은 <농사월령가>의 ‘10월령(月令)’사설이다. 사설 내용중에 ‘강신날’이 바로 저네들식의 추수감사절이다. ‘신이 내리신다’는 강신날은 시월 상달 중 오일(午日, 12간지 중 말의 날)에 햇곡식과 햇과일을 차려놓고 무당을 불러 굿을 하면서 가족 혹은 마을의 평안을 비는 날이었다.
이때는 집안을 지키는 성주신, 먹을거리를 관장하는 부엌신인 조왕신께 먼저 햇곡식으로 지은 떡과 햇과일을 천신(薦新, 새로 난 물건을 먼저 신위에 올리는 일)하면서 가족의 복과 만수무강을 빌었다. 어렸을 적 어머니께서는 타작이 끝나면 으레 팥고물과 콩고물을 켜켜이 얹은 시루떡(우리 고향에서는 ‘가을떡’이라 불렀다.)을 두어말 해 치성을 드린 후 마을 안 일가친척들에게 두어쪽씩 돌렸다. 농사 잘 지었다는 감사의 인사치레였다.
이제는 그런 도타운 세속을 찾아보기 어렵다. 힐링, 힐링하며 농산촌을 찾아도 예전의 그 농산촌이 아니다. 자연의 섭리를 익히면 자연스레 몸과 마음의 병을 치유할 수 있는 법이거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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