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다문화특별기획 - 해피투게더 :일본현지탐방 - ‘다문화 친정엄마’ 무토 시게루 할머니

빼앗긴 듯 딸 보낸 엄마
신념따라 부모떠난 둘째딸
무토 모녀의 25년 세월

우리국민들에게 ‘다문화’..라고 하면 우선 동남아 지역에서 시집온 결혼이주여성을 떠올리게 된다. 가난을 피해 한국남성과 결혼해 좀 더 나은 생활을 찾아온 동남아의 젊은 여성들... 하지만 대한민국의 다문화가정은 다양한 분포로 구성돼 있다. 일본인의 경우만 해도 12,338명(2013년 7월 기준)에 달하고 이는 캄보디아, 몽골, 태국, 대만보다 높은 수치로 중국, 베트남, 필리핀에 이어 네 번째에 이르는 수치다.
농촌여성신문은 창간 7주년을 맞아 다문화친정 특집취재로 일본 미토시에 사는 무토 시게루(84) 할머니 댁을 방문했다. 딸을 한국에 시집보낸 일본어머니와 딸의 이야기를 통해 대한민국 다문화현상의 일면을 조명했다.

▲ 무토 하루미 씨.
둘째 딸…그 시린 기억
일본 토쿄에서 동북쪽으로 약 120km 떨어진 이바라키 현 미토시 이바라키 마치는 조용한 시골마을이었다. 벼농사 중심의 평야지에 위치한 50여 호의 농가는 조경이 잘 돼있고 고풍스러운 멋진 일본식 전통목조주택들이다. 시게루 할머니의 집은 특히나 두드러져 보였다. 할머니는 한 살 연상인 남편을 4년 전 사별하고 슬하에 1남 2녀를 뒀는데 둘째딸 하루미 씨를 한국으로 시집보냈다. 하지만 딸 하루미 씨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시집보낸 것도 아니다. 무슨 이야기인가?
“학교 졸업 후 회사에 잘 다니던 딸이 25년 전(1988년) 한국에 다니러갔다가 느닷없이 한국남자와 결혼했다고 전해와 깜짝 놀랐다.”고 한다.
할머니는 그때의 심정을 묻는 말에 “이제는 잊어야지...”라는 한마디를 던지고 체념의 표정으로 한동안 말문을 닫더니 한참 만에 대화를 이어나갔다.
소방관으로 근무하는 아들. 가고시마 현으로 시집가 잘 살고 있다는 큰 딸에 비해 하루미 씨에 대한 서운한 감정은 아직도 있는 듯 했다.
딸이 많이 보고 싶지 않느냐는 질문에도, 어릴 적 애틋한 추억에 대한 물음에도 그저 환한 웃음으로 대신할 뿐이었다.

▲ 84세인 시게루 할머니는 자전거를 타고 매일 텃밭에서 소일하며 건강을 챙긴다.
▲ 무토 시게루 할머니는 고풍스런 일본전통식 자택에서 취재진을 반갑게 맞으며 둘째딸 하루미씨 이야기를 들려 주었다.
“행복하게 사는 게 효도”
하루미 씨는 1988년 한국에 와서 종교적(통일교)인 사명감으로 남편 서 모(55)씨와 결혼했다. 그는 “반대가 심할 것 같아 한 3, 4년 연락을 못 드릴 것 같다고 하고 결혼을 감행했다.”고 한다. 그때를 생각하면, 부모님에게 씻지 못할 죄송함을 느끼고 있다는 하루미 씨는 그러나 지금 자신의 삶이 행복하다고 했다.
광주시 초월면에서 국화 농사를 짓는 남편과의 사이에 직장생활을 하는 24살 큰 딸과 고3, 고2, 중3의 아들, 딸, 아들을 두고 “아주 금슬 좋게 재미있게 살고 있다”며 “내가 행복하게 사는 것이 진짜 효도고 어머니도 그걸 바라실 것.”이라고 말한다. 하루미 씨는 성남의 디자인 사무실에서 일본과의 무역업에 종사하고 있다.
“저는 한국음식, 문화, 사람들 간의 소통에서 거의 이질감을 느끼지 못하고 살아왔다.”면서도 “아직 매운 것을 먹는 것은 조금 힘들다.”고 한다.
시집 온지 얼마 안 돼 한국의 밤거리에서 젊은 여자들이 술에 만취해 소리를 지르며 싸우는 것을 봤을 때는 “일본에서도 촌에서만 살아서 그런지 그런 생소한 모습에 상당히 놀랐다.”고 회상한다.
하지만 하루미 씨는 한국인의 정이 정말 깊다면서 “시어머니께 처음 인사를 드릴 때 내 손을 꼭 잡으시고 눈물을 흘리시는데 너무나 감격했다.”고 말한다.
이런 모습은 속마음을 잘 드러내지 않는 일본에서는 보기 힘든 일이라면서...

그래도 엄마의 마음은…
할머니는 건강하다, 지금도 자전거를 타고 다니며 마을 나들이나 시장을 볼 정도다. 벼공동육묘 작업에도 참여하는데 이앙이나 병해충방제, 수확 등은 바로 옆집에 살면서 소방관으로 근무하는 막내아들이 주말을 이용해 도와준다. 수확 후에는 식량만 남기고 모두 팔아 생활한다. 정원에서 잡초를 뽑는다거나 텃밭을 가꾸며 소일거리 삼는데 거기서 나오는 야채만으로 자급자족이 된단다.
시게루 할머니가 사는 모습에서는 한일간의 문화적 차이도 보인다.
마당 한켠에 사는 아들집에서 식사를 같이 하지 않느냐는 질문에는 “며느리가 간호사로 근무해 바쁘기 때문에 식사는 따로 한다.”고 했다. 한국의 농가에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다. 도움이 없이도 혼자 생활하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한다.
하루 3끼를 꼬박 챙겨먹고 빵이나 면류보다 밥을 주로 먹으며 특별한 보양식은 하지 않는데 다만 무릎이 편치 않아 조금 불편하다고 했다.
할머니와 하루미 씨는 전화로 자주 안부를 주고받고 무역업 때문에 일 년에 한두 번 일본을 찾는 하루미 씨가 매번은 못가도 자주 친정집에 찾아 간다고 한다.
딸과 사위, 아이들이 방학을 이용해 들를 때면 사위는 열심히 농사일을 거든다고 한다.
하루미 씨의 언니와 남동생은 “동생(누나)의 인생은 그 자신의 것.”이라는 일본인 특유의 앗사리(あっさり)한 태도다.
부모님이 원치 않던 딸의 국제결혼, 정확히 말하자면 부모님이 미리 알았더라면 결사반대했을 하루미 씨의 ‘몰래 결혼’은 아직까지 시게루 할머니의 가슴에 시린 기억으로 남아있다.
하지만 시게루 할머니는 사위 이야기가 나오자 마음 속 깊은 곳에 있는 애틋함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사위가 장모님에게 잘 해주시냐는 질문에 “언어소통이 잘 안 돼 어려움이 있지만 딸에게도 잘 해주고 나에게도 정을 주는 것 같고 좋은 사람”이라며 찬장 속에 넣어둔 외손자들의 어릴적 사진을 꺼내 보인다. 사진 속 외손자들에 대한 시선에 사랑이 듬뿍 담겨있다. 어머니의 정은 역시 세게 어디나 똑 같은 것 같다. 서운함 속에도 딸에 대한 깊은 정이 배어나왔다.
 

저작권자 © 농촌여성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