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광희 기자의 ‘세상만사’

전남 구례에 걸쳐있는 지리산 남쪽자락에 가면, 구름과 산새가 머물고 간다는 뜻의 ‘운조루(雲鳥樓)’라는 옛집이 있다. 조선조때 낙안군수를 지낸 이가 터잡아 짓고 자손 대대로 살아온 양반집이다. 이 집에 들면, 큰 사랑채에서 안채로 통하는 헛간 앞에 ‘타인능해(他人能解)’라 쓰여 있는 둥근 원통모양의 커다란 쌀 뒤주가 있다. 이를테면 쌀독이다. 글자뜻대로라면 ‘남이라도 누구든 열 수 있다’는 말이다. 주인장은 이 커다란 쌀독에 쌀 두 가마니 반을 늘 채워넣고 끼니를 잇기 어려운 마을사람들이 언제든 쌀독 뚜껑을 열고 쌀을 퍼갈 수 있게 했다. 전하는 말에 의하면 이 집안에서는 매년 200여석(石, 200여가마)의 쌀을 수확했는데, 그중 전체의 5분의 1인 40가마니 정도는 ‘타인능해’ 쌀독에 넣어 가난구제를 했다.
또한 운조루 굴뚝을 눈에 띄지 않을 정도로 아주 낮게 만들어 밥 짓는 연기가 하늘 높이 솟아올라가지 않게 했다. 이또한 굶기를 밥 먹듯 하는 가난한 이웃을 배려한 마음씀씀이였다. 가진 자의 나눔과 배려 정신의 한 본보기다. 저 경주 교동의 경주최씨 부잣집의 가훈 중에 ‘내가 사는 곳 백리 안에 굶는 자가 없게 하라’한 것도 노블레스 오블리주 실천의 좋은 예다.
예전에 가을 추수때가 되면 아버지께서는 벼를 벤 다음 품앗이 일꾼들을 사서 논의 볏단을 날라 마당에 커다란 볏가리를 쌓아놓고는 논바닥에 떨어진 벼이삭들을 모른 체 버려두었다. 그도 아까운 알곡들인데, 아버지께서는 그것이나마 없이 사는 사람들을 위해 남겨두신 작은 배려였다. 마당에선 새벽부터 탱탱-탈곡기 방아 돌아가는 소리가 사나흘간 고막을 울려 마당가로 나와 벼베기가 끝난 우리 논을 그윽히 바라보면, 따사로운 가을햇살을 등에 지고 벼이삭 줍는 아낙네며 아이들 모습이 희끄무레하게 가물가물 눈에 들어왔다.
고구마며 배추, 무를 캐고 무녀리같은 놈들은 된서리가 내리도록 그냥 버려둔다든지 고춧잎·깻잎이나마 없는 이들이 솎아 따다가 먹게 한 것 등등 모두가 나보다 가난한 이웃들을 배려한 것이었음을 조금 더 큰 뒤에 깨달았다.
본디 우리 옛조상들은 까치같은 하찮은 미물에게조차 ‘까치밥’으로 홍시감 몇알을 감나무 가지에 남겨두는 배려심을 가진 선한 백성들이었다.
‘세상을 떠나면서 마지막으로 할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약속’이라는 이름을 내걸고 사회복지공동모금회가 2005년부터 유산기부 운동을 벌이고 있는데, 지난해 말까지 참여자가 30여명에 그치고 총기부액이 28억3000만원에 불과하다고 한다. 사회에서 얻은 이익을 내놓는 것이 자기 이익을 지키는 길이라는 것을 자본가들은 아는지 모르겠다. 또 그보다 더 소중한 것은, 그런 따뜻한 나눔과 배려의 정신유산을 후손들에게 물려주는 것이라는 것도 알기나 하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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