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맛을 되살린다 - 맛의 방주에 오른 토종먹거리 8가지

 

앉은뱅이밀은 조상대대로 내려온 토종밀이다. 다른 밀은 크고 흰색 알맹이를 가진데 비해 앉은뱅이밀은 크기가 작고, 껍질은 붉은 황토색을 띄고 있다.
또한 앉은뱅이밀은 입으로 깨물어 보면 잘 으깨지는 연질밀로 맷돌식 제분에 용이하고, 통밀가루의 질도 우수해 우리나라 전통음식을 만드는데 적합하다. 앉은뱅이밀로 만든 대표적인 것이 누룩이다.
누룩은 통밀을 빻고, 빻은 밀에 물을 20% 정도 축여 반죽한 후, 틀에 넣어 적당한 온도에서 숙성시켜 만든다. 앉은뱅이밀의 껍질은 붉은색인 반면에 속살은 다른 밀보다 희기 때문에 누룩을 했을 때 색깔이 곱고, 특유의 향이 좋아 맛을 배가 시킨다. 껍질이 연한 연질밀이어서 작업이 용이하고, 발효도 잘된다. 또한 전통방식의 고추장에는 반드시 밀이 들어가는데, 이때 앉은뱅이밀이 그 어떤 밀보다 고소한 맛이 난다. 또한 앉은뱅이밀을 볶아서 물에 끓여 밀차를 해서 애용하면 속이 편하고, 피부 진정효과도 있다.
앉은뱅이밀은 개량종 보급밀에 비해 키가 작아 50~80cm 정도로 콤바인 수확이 어렵고, 수확량이 적다고들 하지만 거름을 충분히 주면 80cm 이상 자라고, 포기번식도 왕성해 수확량도 많아진다.
또한 오랜 시간동안 한반도 기후풍토에 내성을 키워왔기에 병충해에도 강하다.
특히 가을철 습해 피해나 봄철 우기 피해에 강한 특성을 갖고 있다. 보통 10월 25일부터 11월 5일까지 열흘 동안 심는다. 다른 밀보다 5~10일 정도 수확이 빠른데, 이는 벼의 적기 이앙에 좋다.

 

빵보다 칼국수 수제비에 더 적합해
다른 밀 종류는 글루텐 함량을 높이는 쪽으로 육종되어 왔다. 빵의 요리 적성을 강화하기 위해서다. 반면에 앉은뱅이밀로 빵을 만들면 강력분 일반 밀로 만든 빵에 비해 빵의 부피가 비교적 작다. 하지만 소화불량이나 아토피의 원인이 되는 글루텐함량이 낮기 때문에 노약자나 어린이에게는 앉은뱅이 밀로 만든 빵이 건강에 좋다.
앉은뱅이밀은 단맛이 많이 나고, 특유의 향이 좋아 밀가루 반죽에 첨가물이 들어가지 않고 자체의 맛이 중요한 수제비, 칼국수, 전에 인기가 좋다.

전통적인 생산 지역은?
앉은뱅이밀은 경남 서남부 지역인 진주, 고성, 함안, 사천, 남해 등지에서 전통적으로 재배되어 왔으며 쌀과 이모작하여 재배 중이다. 특히 앉은뱅이밀은 진주시 금곡면과 그 일대에서 주로 생산되고 있다. 금곡면은 진주시의 남부지역에 위치하고 있고, 고성군과 사천군이 인접해 있으며, 5일장이 서는 지리적 특성으로 인해 앉은뱅이밀의 재배와 이를 수집, 제분하기에 용이했다.
현재 진주 금곡에서는 영농조합을 만들어 앉은뱅이밀을 생산하고 있으며, 2012년 기준, 작목반 27명이 재배면적 30ha에서 120톤을 생산한다. 마켓이나 시장에서 판매되는 양은 거의 없고 전량 전화, 인터넷을 통한 직거래로 판매되고 있다.

품종이 소멸위기에 처한 이유는?
1963년 밀, 보리 수확 철에 경남지역에서는 거의 두 달을 매일같이 비가 와서 큰 흉년이 든 적이 있다. 그해 진주 금곡정미소 백관실 대표의 어머니는 “종자라도 남겨야 한다”는 시아버지의 명에 따라 빗속에 밀 열매를 거둬서 대청에 탈곡기를 차리고, 미지근한 불로 건조해서 앉은뱅이밀 종자 2말을 건져냈다는 일화가 있다.
1984년 정부 밀수매 중지 때 밀수매 뿐만 아니라 정미소의 제분기도 사라지게 됐다. 대형 제분 공장은 모두 수입밀에 맞게 제분기를 운영하였고 결국 앉은뱅이밀을 제분할 수 있는 곳은 금곡정미소 하나만 남았다. 이로 인해 국내의 밀 생산은 큰 타격을 입었고, 1970년대 초 15~20%였던 국내 밀 자급률이 1990년에는 0.05%까지 떨어졌다.
1991년 전국적으로 우리밀살리기 운동이 시작되었지만 공장에서 가공이 용이한 품종인 개량종 위주로만 재배되었고, 농협이나 지자체에서 실시한 밀 수매에서도 토종 앉은뱅이밀은 붉다는 이유로 외면을 받게 되었다.
하지만 현재 100여년의 역사를 가진 금곡정미소에서는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소형제분기 몇 대를 계속 유지 운영하며 소량으로 재배하는 앉은뱅이밀을 제분해 주고 있다. 또한 앉은뱅이밀가루의 제품 질을 유지하기 위해 독자적으로 채종포를 운영하고 있다. 채종한 종자를 인근 농가에 보급하여 수확한 밀을 전량 계약 재배함으로 꾸준히 앉은뱅이밀의 생산 기반을 유지해 오고 있는 실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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