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광희 기자의 ‘세상만사’

우리 민족처럼 팔자(八字)에 기대어 사는 종족도 이 지구상에서 그리 흔치 않을 것 같다. 자신에게 주어진 운명을 스스로 타개해 나가기 보다는 거의가 다 ‘못난 자신의 팔자소관(所關)’으로 돌린다. 의타심이 빚어낸 의지박약의 소산이다. 특히 전통사회의 여인네들은 가부장제라는 견고한 틀 속에 옭매인 기구하기 이를 데 없는 자신의 팔자를 운명이니 숙명이니 하며 ‘끝없이 참아내는 것’으로 미덕을 삼았다.
옛 여인네의 팔자로 치면, 저 고전 판소리<변강쇠가> 사설 중에서 평안도 월경촌(月景村)에 사는 여주인공 옹녀의 팔자보다 더한 극한의 팔자가 있을까 싶다.
‘사주에 청상살(靑孀煞, 청상과부가 될 사나운 기운)이 겹겹이 쌓인 고로, 상부(喪夫, 남편을 여읨)를 하여도 징글징글하고 지긋지긋하게 단콩 주워먹듯 하것다. 열다섯에 얻은 서방 첫날밤 잠자리에서 급상한(急傷寒, 과도한 잠자리일로 갑자기 죽는 것)에 죽고, 열여섯에 얻은 서방 당창병(唐瘡病, 매독)에 튀고, 열일곱에 얻은 서방 용천병(발작)에 펴고, 열여덟에 얻은 서방 벼락맞아 식고, 열아홉에 얻은 서방 천하에 대적(大賊, 큰 도둑)으로 포도청에 떨어지고, 스무살에 얻은 서방 비상(독약) 먹고 돌아가니 서방에 퇴(退, 물림)가 나고 송장치기 신물난다.’
열 다섯살부터 스무살까지 6년간 해마다 얻은 신랑 여섯명이 튀고, 펴고, 식고, 떨어지고, 돌아가고… 죽어나가니 이 얼마나 기구하고 불행한 모진 팔자인가.
그런가 하면, 팔자 속에 크게 들어앉아 있는 것이 가난과 궁상이다. 역시 고전 판소리<흥부가>를 보자. 흥부 나이 40에 자식을 ‘한 해에 한 배씩, 한 배에 두셋씩’ 줄대어 낳았는데, 늘 끼니 잇기가 어려웠다. 자식들은 눈만 뜨면 ‘부르는 게 어메, 아베! 음식이름 아는 것이 밥 뿐이로구나~’였다. 흥부와 흥부 아내는 신새벽부터 밤늦도록 오만가지 품삯일로 허리가 휘어져도 ‘다 팔자려니’하고 살았다.
고추 당초보다 더 맵다는 시집살이도 ‘타고 난 팔자’ 속 인고(忍苦)의 세월이었다. 당시의 부모들은 시집가는 딸에게, 며느리 미워 그 며느리의 발뒤꿈치조차 보기 싫어하는 시어머니의 박대에 ‘벙어리 삼년, 귀머거리 삼년, 장님 삼년’- 이렇게 석삼년을 하고 싶은 말이 있어도 말 말고, 보고도 못본 척, 듣고도 못들은 척 하라는 당부의 말을 십계명처럼 가슴에 꼭꼭 심어주었다. 그리고 ‘그 집(시댁) 귀신이 되라!’고 못박았다.
그런데 요즘, 20~30년을 함께 살아온 그 노년의 아버지·어머니들이 “내일 죽어도 남은 인생을 하루라도 편하게 살고 싶다”며 ‘운명아, 내가 간다, 길을 비켜라!’ 식으로 이혼도 불사, 황혼이혼이 3만건을 넘어섰다니…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야 하는’ 지금은 쓸쓸한 이혼시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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