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점호 농촌진흥청 벼육종재배과장

▲ 이점호 농촌진흥청 벼육종재배과장

식량문제는 먹거리 아닌
사회적·정치적인 문제

우리민족의 주식인 쌀은 5천년의 역사를 함께 한 동반자이며, 벼는 농사의 근본으로 여겨왔다. 긴 세월 배고픔을 대물림해 온 우리나라가 오랜 굶주림의 역사에서 벗어나 지금의 풍요를 누리게 된 바탕도 ‘통일형벼’ 개발이라는 혁명적인 사건이 있었기 때문이다.
식량작물에 대한 연구는 대한제국 말기인 1906년 권업모범장부터다. 일제 강점기에는 주로 국내 재래종이나 도입품종을 그대로 재배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 품종들은 키가 커서 잘 쓰러지고 병에 약하며 수량성도 낮아 태풍이나 병해충에 의한 피해가 컸다. 이 같은 상황은 해방 후 1950년대까지 지속됐는데 배고픔의 대명사가 된 보릿고개도 이 시절이다.
본격적인 식량작물연구는 1962년 현재의 농촌진흥청이 설립되면서 시작됐다. 1971년 농촌진흥청이 개발한 ‘통일’ 품종은 쌀 수량을 획기적으로 높여 보릿고개를 극복했다.
통일벼의 성공은 다양한 신품종 개발로 이어져 쌀을 자급자족할 수 있게 했다. 오늘날 우리가 이야기하는 녹색혁명은 ‘통일’ 이후 육성된 ‘유신’, ‘밀양21호’, ‘밀양23호’, ‘래경’, ‘밀양30호’ 등 다양한 통일형 품종들이 그 주역이라 할 수 있다. 이는 당시 국내·외를 오가며 통일형 품종의 단점을 보완하고 개량한 연구와 지도분야 과학자들의 현명한 판단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그러나 1978년 도열병 대발생과 1980년 극심한 냉해를 겪으면서 통일형 품종들도 약점을 드러냈다. 이 사건은 외국에서 몇 배의 가격으로 쌀을 수입하는 결과를 초래함으로서 온 국민들에게 식량의 소중함을 다시 한번 일깨워주는 교훈을 남겼다.
또한 육종가에게는 우리나라 벼 품종의 내병성과 내재해성을 강화하는 계기가 됐다. 그 이후 통일형 벼 품종개발 노하우를 바탕으로 재해에 견디면서 수확량도 많은 벼 품종이 꾸준히 개발되고 있다.
최근 세계적으로 빈번한 기상재해와 인구증가, 중국·인도 등 신흥 개발국의 육류소비 급증 등으로 식량위기가 가속화되고 있다. 곡물자급률이 24.3%인 우리나라는 낮은 곡물자급률로 곡물 수입의 대부분을 특정 국가와 회사에 의존하고 있어 상시적으로 식량 수급에 불안정성을 안고 있다.
식량 문제는 이제 단순히 먹거리 문제가 아니라 ‘이집트 혁명’에서 보듯 사회적·정치적인 문제로도 연결된다. 그럼에도 식량위기에 대한 우리의 경각심은 너무 미흡하다. 식량위기에 대한 불감증 해소와 함께 국가적 차원에서 식량안보 위협에 대비해야 한다.
우리나라의 벼 육종사업은 단순히 주식을 해결하는 품종개발 의미를 벗어나 농업의 근간을 이루고 ‘민족 정체성’의 기반이 돼온 중요한 사업이다. 또한, 국가적으로 글로벌 시장개방에 대비하고, 장기적으로는 기후변화에 따른 이상기상에 대비해 식량안보를 책임지는 막중한 임무가 내재돼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1970년대 ‘통일벼’ 개발을 통해 오랜 민족의 숙원이었던 식량자급을 해결한 것처럼 식량위기를 우리 농업·농촌 발전의 기회로 삼아 식량강국으로 발돋움하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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