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광희 기자의 ‘세상만사’

60~70년대에 중·고등학교를 다닌 이들이라면 ‘펜팔(pen pal)’이란 낱말이 그리 설지 않을 것이다. 사전적 풀이대로 하면, 편지글을 주고 받으며 우정을 쌓아가는 벗이다.
그러나 우정은 왕왕 연정(戀情)으로 바뀌어 결혼에 골인하는 커플들이 비일비재 했다. 하기야 쉽사리 이성교제를 할 수 없었던 터였으니 당시의 청춘남녀들에게 펜팔은 자신과 생각을 나눌 수 있는 이성을 이어주는 소통의 연결고리였던 셈이다.
그 무렵 ‘낙양(洛陽)의 지가(紙價)를 올리며’ 불티나게 팔리던 <샘터>라는 월간잡지와 타블로이드판 주간지 끝머리에는 국내 혹은 해외펜팔을 원하는 이들의 이름들이 빼곡하게 실려 있었다.
외로움이 한껏 묻어있는 월남전 파병용사들의 이름도 앞서거니 뒤서거니 소개됐다.
이름과 성별, 나이, 직업, 취미사항, 주소 등의 간단한 신상프로필이 소개되었는데, 그중에서 맘이 가는 이성 몇명을 찍어 동시다발로 편지를 띄우는 것이다.
밤새 머리 긁적이며 단한번도 만나본 적이 없는 상대방 이성에 대한 애틋한 마음을 담아 구구절절 미사여구(美辭麗句)로 한껏 멋을 내가며 편지를 쓴다. 그리고는 일일여삼추(一日如三秋)같은 긴긴 기다림 속에 답장을 기다린다. 답장이 없으면 시쳇말로 ‘꽝’이지만 행여 답장이 오면 순항하듯 얼굴사진 교환, 만남으로 차근차근 이어진다.
그렇듯 한자 한자, 행간과 행간 속에 정(情)을 꼭꼭 눌러담아 전하던 손글씨 편지는, 타자기며 컴퓨터의 등장으로 원시통신수단으로 전락해 소통의 광장에서 사라져 간다. 불과 30여년 사이의 급속한 변화다.
그 자리를 지금 스마트폰이 순식간에 점령하고 인간의 사고와 문화행태까지 지배하고 있다. 밤낮 없이 신경세포처럼 깨어서 인간의 행동양식을 제어시키기까지 한다. 아침 식탁머리에서도 가족은 없고 시도 때도 없이 ‘짖어대는’ ‘카톡!’ 전자음에 눈과 귀가 빠져 있다. 길거리며 지하철 안이고 할 것 없이 온통 스마트폰에 빠져 ‘고개숙인’ 사람들 뿐이다. 물론 우리만 그런건 아니다.
미국의 한 여론조사 기관이 발표한 ‘2013년 모바일 소비자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인의 72%가 스마트폰을 자신의 몸 1.5미터 이내에 두고 지내며, 심지어는 10명 중 한명은 성관계를 하면서도 스마트폰을 이용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그뿐인가. 이 새로운 문명기기 때문에 목디스크, 안구건조증, 가성근시, 손바닥뼈, 인대 염증을 호소하는 환자들이 부쩍 늘어나고 있다는 것이니… 이 스마트하지 못한 고통, 누구를 탓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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